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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시인인 폴 발레리라는 사람이 한 말이라는데, 우연히 접하게 된 이 메시지에 종일토록 나의 생각이 꽂혔다. 이 말을 고전적 한문 문장으로 한역한다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生不循思 - 생불순사
則思循生 - 즉사순생
삶이 생각을 따르지 않는다면, 생각이 삶을 따르게 될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삶’과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능력을 ‘생각’이라고 한다면, 사고력은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능력이며, 타인과 세상을 분별하고 참된 지식을 생산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생각하는 힘인 사고력을 온전히 갖춘 사람만이 ‘현상’이 아닌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사고력을 배양하는 이 사유의 세계에도 절차와 방법이 있다. 공자는 깨달음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한 과정으로 ‘학(學)’과 ‘사(思)’를 강조하였다.
學而不思則罔 - 학이불사즉망
思而不學則殆 -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사색하여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사색하는 힘을 기르되 인류의 집단지성이 이루어 놓은 보편적인 학문을 배우지 않으면 검증되지 않은 독단의 세계에 빠져 위태로워지기 쉽다는 말이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학(學)’과 ‘사(思)’의 조화로운 수양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돈오(頓悟)’라는 것도 ‘점수(漸修)’적 삶의 수련이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지 구도자적 갈망조차 없이 하늘에서 거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철학의 시작은 의문에서 출발하지만, 종교의 시작은 깨달음에서 출발 되어야 한다. 깨달음 없는 맹목적 신앙은 그저 성전의 마당만 밟는 종교적 ‘호갱’ 소비자일 뿐이다.
톨스토이는 말하기를 “‘기억’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색’에 의해서 얻어진 것만이 참된 지식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이란 현상세계에 초점을 맞추는 인생이다. 시각과 육감에 의한 현상에 집착하여 언제나 자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감정과 생각이 변해갈 뿐이다.
현상에 나타난 것만으로 본질을 단정 지으려는 성급한 판단 때문에 경솔한 처신으로 오류를 범하기 쉽다. 결국에는 세상을 보이는 것만 보게 되므로 자신의 내면세계조차도 바르게 인지할 수 없는 왜곡된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눈을 믿는 자는 결단코 성불할 수 없다.”
니체는 말하기를 “춤추는 별을 분만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카오스를 품고 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끊임없이 의문 해야 한다. 사유 없는 지식은 흉기에 불과하다. 질문과 의견이 필요 없는 사람은 ‘군인’이거나 ‘노예’일 뿐이다.
진실을 보고 싶다면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말고 현상의 이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을 감고도 볼 수 있는 감식안을 가져야 한다. 현상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다면 세상이 온통 혼탁과 의혹투성이여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 채, 저 좋은 대로 즐거워하며 희희낙락할 것이다.
Pablo Picasso의 뼈아픈 일침을 여기에 새겨 둔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눈이 아니고 마음으로 읽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