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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이 두 가인지 과제 중에서 첫 번째 과제는 이미 달성했다. 인류는 20세기 이후 눈부신 지식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모두가 의식주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경제학자 스티글리츠는 미국이 건국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전체 노동력 중에서 약 70%가 투입되어야만 미국인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었지만, 200여 년이 지난 현재에는 전체 노동력 중에서 단지 3%만 투입되어도 미국인이 소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경제학자 이정전은 생산된 물건이 잘 팔리기만 한다면 전체 노동자 중에서 70%가 일을 하지 않고 놀더라도 국민경제 전체의 생산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인류는 이미 생존 문제를 충분히 해결하고도 남을 정도의 높은 생산력 발전을 이룩했다는 것이다.
생산력 수준이 낮았던 과거에는 전체 파이의 크기가 너무 작아 이상사회 건설은 먼 미래의 과제로 여겨졌다. 그러다 보니 평등한 분배 이전에 일단은 파이의 크기부터 키워야 한다는 자본가나 지배자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내는 파이의 크기는 이상사회를 건설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크다. 문제는 그 큰 파이를 극소수가 독점하는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개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국제구호기구인 옥스팜의 2017년 보고서에 의하면 8명의 슈퍼 리치(Super Rich)가 전 세계 하위 36억 명의 재산을 합한 것보다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상위 1% 부자의 재산이 나머지 99% 인류의 재산을 다 합한 것보다 2배 이상 많다.
이러한 극단적인 양극화는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더욱 심해졌다. 미국과 같은 식량 과잉생산국들이 남아도는 식량을 기아에 시달리는 국가들에 나눠준다면 인류는 굶주림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게 하는 대신 곡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남는 식량을 바다에 버리거나 연료로 소비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문제는 생산력을 더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 즉 사회제도의 개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의 인류는 무엇보다 파이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이상사회를 건설할 수 없었다. 반면에 파이가 충분히 커진 오늘날에는 불합리한 사회제도로 인해 이상사회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류는 앞으로 더 많은 풍요, 더 많은 돈이 아니라 ‘화목’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즉 대동세상의 두 가지 내용 중에서 풍요는 이미 달성했으므로 평등한 사회를 건설함으로써 화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를 고립적 생존 불안에서 해방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도는 기본소득이다.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져야만 하는 시대착오적인 사회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들은 생존 불안에서 해방될 수 없다. 설사 운이 좋아서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모두에게 가능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생존 문제를 승자독식의 개인 간 경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면 이웃들과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 즉 인간관계의 파탄과 정신건강 악화 등의 불행을 피할 수 없다.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제도 중의 하나인 기본소득의 중요한 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인들은 한반도에 정착한 이래 수천 년 동안 생존 문제를 집단이나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해결하려는 공동체적 문화, ‘우리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농촌의 마을 공동체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비록 지주에게 가혹하게 수탈 당할지라도 공동체 성원들이 함께 농사를 짓고 수확물을 공정하게 분배하면서 화목하게 살아보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집단적 생존 불안을 공동체의 힘으로 극복하면서 낙천적으로 살아온 한국인들은 오히려 현대의 비약적인 경제발전 국면을 못견뎌하고 있다.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낯설고 비정한 세상, 그것이 초래하는 고립적 생존 불안을 견뎌내지 못해 정신적으로 파산하거나 자살을 하고 있다. 한국의 자살률이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0년대에 세계 1위 수준으로 치솟아 지금까지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국가, 공동체가 개인의 생존을 책임지는 사회에서 살아가야만 정신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기본소득은 현 시점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출발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