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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방이 내부로부터 무너지고 있다. 초급 간부들의 기강과 사기가 무너지고 지휘관의 권위가 사라진다. 세 가지 사건을 차례로 보자.
#사건 1.
지난 10월 25일. 해병 1사단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병사가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을 고위공직자수사처에 고발했다. 그 병사가 전역하고 하루가 지나자 지체없이 이전의 상관을 고발한 사연은 이러하다. 이 병사는 지난 7월에 경북 예천에서 실종자 수색 중 고 채수근 상병과 함께 급류에 휩쓸렸다. 급류에 쓸려 멀어져 가는 채 상병을 구하지 못하고 자신은 생존했다는 데 대한 자괴감, 사건 이후 무리하게 수중 수색을 지시한 사단장의 책임 회피에 대한 분노를 안으로 삭이며 지낸 군 생활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군에서는 재난을 겪은 병사에게 심리 상담을 받도록 했으나 상담 기록을 사단장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거부했다고 한다. 사단장의 노기를 달래느라 간부들은 연일 숨죽이고 살아야 했다. 사건 당일에도 안전을 염려했던 간부들이 사단장의 강압적인 수중 수색 명령에 복종한 죄로 보직이 해임되는 황당한 현실을 목격한 이 병사의 트라우마는 더욱 심화했다. 이 병사는 전역할 날을 기다려 해병 1사단 내에서 벌어진 부조리를 고발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지난 7월의 사건 이후의 해병 1사단이 과연 군대로서의 제 기능이 작동했느냐다. 우선 이 사단에서는 상벌체계가 완전히 붕괴됐다. 흔히 공명심으로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은 "공은 나에게, 책임은 부하에게"를 신조로 움직인다. 문제는 이런 지휘관의 속내가 부하들에게는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거다. 사단장이 자신의 지휘 책임은 회피하면서 사건의 책임을 부하에게 전가하고 중간 간부들을 들들 볶아대니까 부대의 기강은 속으로 무너져 내렸다. 굳이 손자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상벌의 공정성이 상실된 군대는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대처럼 붕괴하게 되어 있다. 지휘관의 리더십이 권위를 잃고, 병사들은 명령에 복종하기를 회피하려 한다. 이런 군대는 전쟁에서 지는 군대다. 재난의 현장에서 생존한 병사가 정작 그 이후 더 힘들었던 사연이 바로 이 점이다.
이 병사가 언론에 공개한 사연을 보면 사건 이후 노기를 뿜어대며 간부를 주눅 들게 하는 사단장, 영결식 날 조문 온 정치인들을 허겁지겁 따라다니던 장군들, 유족과 만나는 장면을 사진 찍으려고 막상 피해자인 해병대원들을 비 맞은 채로 세워놓고 우산 들고 뛰어다니는 국회의원 보좌진 등 무너진 군대를 짓밟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장면들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게다가 최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대해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8월 초에 김 사령관은 해병대 광수대장인 모 중령과 통화에서 “(박정훈 대령의 경북 경찰서에 사건을 이첩한 것은) 정직하게 한 일”이라고 말했고, “아마도 박정훈이 내 지시를 어긴 것으로 (국방부 검찰단이) 몰고 갈 것”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그랬던 사령관이 국정감사에서는 “박정훈 대령이 자신의 이첩 중단 지시를 어겨” 사건 처리가 잘못된 것으로 증언했다. 그 사단장에 그 사령관이다. 사건의 내막을 다 알고 있는 해병대원이 수두룩한데 이런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앞으로 해병대에 영이 제대로 서겠느냐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이러니 해병대원들은 자신이 학대당했다는 깊은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거다.
#사건 2.
이게 어디 해병대만의 문제인가. 더 끔찍한 일이 있다. 사건은 1985년 10월 24일 오후 3시 35분에 일어났다. 당시 육군 8사단 21연대는 공지 합동훈련을 수행하고 있었다. 증언에 의하면 훈련 중인 중대의 중대장은 김 모 화기 소대장을 통해 포대장에게 훈련장으로 박격포를 두 발 쏘도록 지시했다. 한 발은 멀리, 한 발은 짧게 쏘라는 중대장의 이상한 지시가 이행되어 돌격 중이던 이승남 이등병이 박격포 파편에 맞아 숨졌다는 거다. 사건 조사가 시작되자 그 중대장은 "박격포 사격 자체가 없었다"며 사망한 이등병은 "불발탄을 밟아서 숨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격포탄이 밟아서 터진 것이라는 설명은 기가 찬다. 당시 중대장은 사건 직후 중대원들에게 이를 교육하며 입을 맞추도록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당시 증언을 바탕으로 최근 군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가 이 사건에 대해 “이등병의 사망이 조작·왜곡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 중대장이 10월에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신원식 예비역 중장이다. 더 놀라운 일도 이어졌다. 신원식 장관은 최근 장관으로 영전되면서 이 사건을 군 의문사위에 진술한 증언자와 의문사위원회의 조사관, 그리고 이를 보도한 언론인까지 7명을 고소했다. 자신이 장관으로 임명되려니 일단 증언자들을 무더기로 고소하여 입을 막으려 했는지, 무척 급하기는 급했던 것 같다. 국방장관이 같은 국가기관이 절차에 의해 조사하여 내린 결론을 뒤집기 위해 국가기관의 공무원을 상대로 고소를 했다는 이야기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