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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진령군’이 떠도는가(1)

여당 대표라는 사람이 뜬금없이 경기도 김포를 서울에 합치겠다는 식의 폭탄 발언을 하였다. 관계부처와 충분한 사전 협의나 준비도 없이, 총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메가 서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이야기이다. 여당 대표는 그럼 행정부와 아무런 교감도 없이 무턱대고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메가 서울’ 발언은 총선에서 여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포퓰리즘의 극치라고 보아야 맞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많은 시민들이 여당 대표의 이번 발언에는 모종의 배후가 있을 것이라는 의혹을 품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또 천공이다. 현 정권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필시 천공이라는 역술인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고개를 드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천공은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좋은 기회는 자꾸 준다. 우리 아이들은 희생을 해도 이래 큰 질량으로 희생을 해야지 세계가 우릴 돌아보게 돼 있다”는 천인공노할 발언을 했다. 천공에게는 슬픔과 애도 같은 감정은 없고 기상천외한 국가주의적 발상만 있는 것 같다. 제정신을 가진 보통사람들의 눈에 그는 제정신이 없는 사람으로 보인다.
이런 이상한 역술인 천공이 어떻게 윤석열 대통령과 특별한 사이가 됐을까. 그는 지난번 대통령 선거 직전에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김건희 씨를 통해 윤(석열) 총장을 알게 됐다. 멘토는 아니고 검찰총장 사퇴 문제를 조언해 줬다.”(한겨레신문)
놀랍게도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사퇴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천공의 조언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이러니 시민들은 대통령의 배후에 천공이 도사리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지는 것이다.
해괴한 정부 정책이 발표되면 늘 천공 동영상이 등장하곤 하는데 천공은 이번에도 이미 ‘메가 서울’을 연상하게 만드는 발언을 했었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만들려고 하면 모든 경기도를 통합해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로 만들어야 된다.”(세계일보)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이상야릇한 주장이다. 하지만 천공은 복잡한 수도권의 각종 문제를 해결하려면 자신이 내놓은 획기적이고 결정적인 제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천공은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 사회 문화에 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인 것으로 보인다. 뭐 하나 뚜렷이 내세울 것 없는 인물이 대통령 일가와 특별한 사이라고 하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천공과 최고권력층의 교류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구한말 고종 내외와 역술인 진령군(眞靈君) 이 씨가 맺었던 관계 정도라면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1882년 고종 19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신변의 위협을 느낀 명성왕후(훗날의 황후)는 장호원의 친척 집으로 피신했다. 이때 이 씨가 찾아와 하루하루 불안에 떠는 왕후의 심신을 안정시켰다. 왕후는 날이 갈수록 그 신통력을 확신하게 되어 대궐로 돌아올 때 그를 데리고 왔다. 그 뒤로도 왕후는 몸이 불편할 때마다 이 씨를 궁궐 안으로 불러들였는데, 신기하게도 그의 손이 몸에 닿기만 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황현의 ‘매천야록’, 1권).
고종 20년(1883)이 되자 이 씨는 왕후 앞에서 이상야릇한 요청을 했다. 자신은 전생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 장군의 딸이라고 하면서 관우를 섬길 수 있게 관왕묘(關王廟)를 지어달라고 애원했다. 국왕 내외는 그 요청대로 북악산 아래 숭동(명륜동 1가)에다 관왕묘를 새로 짓고 북묘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고종 내외는 이 씨를 진령군으로 불렀다.(정교의 ‘대한계년사’, 1권).
중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에서도 관우는 한 사람의 역사적 인물 또는 문학적 인물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관우는 중국의 민간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관우 앞에 향불을 피워놓고 복을 비는 사람들이 많다. 4백 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조선이 명나라에 도움을 청했을 때,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명나라 황제의 꿈에 관우가 나타나 조선을 도우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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