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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령군이 도성에 있을 때도 중국 군대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었다. 임오군란을 계기로 들어온 청나라 군대의 힘으로 고종과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을 제압할 수 있었다. 진령군이 새로 관왕묘를 지어달라고 요청한 것은 청나라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었으므로 어설픈 계산이기는 하였으나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일은 아니었다. 고종 내외가 진령군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는 모종의 정치적 함의가 있었다고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진령군에 대한 국왕 내외의 총애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자 모리배들이 진령군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그에게 뇌물도 바치고, 아부도 늘어놓았다. 벼슬을 얻기 위한 수작이었다. 충청도 영동에 살던 부자 양반 이용직은 그에게 l00만 냥을 가져다 바치고 경상도 관찰사 자리를 얻었다. 이용직은 부임하자마자 본전을 챙기기 시작해, 1년쯤 지나자 경상도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고 한다. 경상도 김해에서 한양으로 올라온 야심가 이유인도 진령군을 잘 사귀어 출세하였다. 나중에는 법부대신까지 지내게 되었는데, 겉으로는 진령군의 수양아들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사람이 내연관계라는 추문도 끊이지 않았다.(‘매천야록’, 1권)
시간이 흐르자 조정 대신들도 몰래 진령군을 찾아와 뇌물을 바쳤다. 어떤 자는 아내를 보내어 진령군과 언니, 동생 사이가 되게 하였다. 염치도 체면도 없었던 조병식과 윤영신, 정태호는 진령군의 수양아들이 되었다. (‘매천야록’, 1권) 아주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 특히 조병식은 고종 27년(1891)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을 때, 동학교도들이 찾아와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자 그들을 탄압하였다. 그는 교도들과 조정의 관계를 악화시켜 나중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됐다. 또, 조병식은 독립협회가 왕을 쫓아내고 공화정을 세우려고 한다며 무고했다. 도대체가 나랏일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대신이란 사람들 다수가 조병식 못지 않았다. “진령군이 돈을 던져주면 그 발아래 조아리며 부디 저희의 자리를 지켜 달라며 매달렸다”. (‘대한매일신보’, 1908년 4월 26일)
거꾸로 진령군이 무책임하게 내뱉은 말 한마디에 출세가 막힌 사람도 있었다. 어느 날인가 진령군은 고종에게 이런 식으로 경고하였다. “관운장(관우)께서는 여포에게 살해되었다. 지금 관리 중에 여규형 같은 사람은 여씨이니, 멀리 하시라.”(매천야록, 1권). 알고 보면 여포가 관우를 살해한 것도 아니었고, 게다가 19세기 조선에서 문신 여규형이 관우의 죽음과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하지만 고종 내외는 미신에 빠진 나머지 진령군의 무책임하고 쓸데없는 말을 믿었다. 여규형은 본래 재주가 탁월하였으나, 평생 세 번씩이나 귀양살이에 시달렸다. 만년에는 일제에 동조해 겨우 관립한성고등학교에서 한문 교사로 공직생활을 마감하였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이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거두자 명성왕후와 가까웠던 진령군은 여지없이 쫓겨났다. 그래도 진령군의 가족들은 살아남았다. 그의 손녀사위 이한영은 법부의 협판을 지냈다. 요즘으로 말하면 법무부 차관이었다. 그는 비리를 많이 저지른 악당이었다.
지난 대선 때 시민들은 윤석열 후보의 뜬금없는 행동에 경악하였다. 그는 손바닥에 임금 왕(王)자를 쓰고 대선 후보토론회에 나왔다. 그것도 무려 세 번씩이나 되풀이하였다. (‘나무위키’, <윤석열 토론회 손바닥 왕자 논란>) 웬만큼 역술에 현혹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기상천외한 행동아니었던가.
천공이란 존재는 대통령 일가와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 내 주변 양식있는 시민들은 천공이란 이름만 들어도 진저리가 난다고 한다. 제정 러시아 말기에 라스푸틴이란 역술인이 국정을 농단한 것과 흡사하지 않은가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혀 현실인식에 기반하지 않은 ‘메가 서울’ 문제가 그런 의혹을 더욱 크게 만든다. 서울에 편입한다고 해서 교통문제, 과밀학급문제, 의료시설문제 등 김포시민들이 진정 원하는 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가. 김포에서는 비무장지대가 지척이다. 북한과 최단 거리에서 대치 중인 해병사단도 있다. 서울로 김포를 편입하기 전에 남북관계부터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과연 여당 대표는 이런 실정을 모르고 ‘메가 서울’이란 화두를 꺼낸 것일까? 아니면 천공의 얄팍하고 기이한 주문에 홀린 대통령이 시켜서 한 말인가? 지금 우리 정치판에는 미신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 같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