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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종교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

10월 29일 서울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주최한 시민추모대회에 윤석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성북구 영암교회에서 측근들과 함께 추모예배를 드렸다. 10월 31일자 ‘시민언론 민들레’ 이승호 에디터의 기사에 따르면, 급조된 추모예배는 영암교회가 아니라 대통령실이 기획해 요구해온 것이었으며, 교회 측에서 여러 이유를 들어 거부했는데도 대통령실이 완강하게 밀어붙였다고 한다. 교인들은 성탄절 때 찾아와 교회를 이용하더니 또다시 똑같은 짓을 하느냐는 불쾌감을 토로했다고 한다.(윤석열 ‘셀프 예배쇼’ 교인들도 분노…“교회가 만만한가” 참조)
10월 30일 예장목회자연대는 “정치는 종교를 오용하지 말라!”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윤석열 대통령의 영암교회 예배를 강하게 비판했다. “예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고 드려지는 것임을 확인하고, 사람을 드러내고 뭔가 보여주려는 것은 결단코 금물”인데도, 윤석열 대통령이 “아픔을 당한 희생자 가족들을 외면하고 정치적 추모를 한 것은 종교를 이용한 아주 나쁜 사례”이며 “예배를 가장한 정치쇼에 불과한 것”이므로, 영암교회에서의 추모예배가 신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기독교장로회 홍주민 목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영암교회는 거절했는데, 윤석열이 거절을 거절하고, 난입해서 단상을 점거하고 추모쇼를 하고 사진 찍고 밥 먹고 갔단다. 이거 주거 침입보다 더한 <성전 침탈> 아닌가. 히틀러가 교회를 자기 권력의 도구로 이용하여 농락한 것처럼, 윤석열도 교회를 검사 파쇼의 도구로 능욕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1934년 5월,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 칼 바르트는 고백교회의 부탁을 받아 작성한 총 6개 조항의 바르멘 선언 첫 조항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서가 증언하듯이, 우리가 들어야 할 유일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히틀러의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설교에서, 정치경제 권력자들의 편에 서면 안 된다는 말이다.
어린 시절 개신교 교회를 다녔다는 윤석열 대통령은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받아 암브로시오 세례명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2021년 10월 10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순복음교회 예배에 참석했고, 2021년 10월 30일에는 기자들에게 자신과 어머니가 “모두 독실한 불자”라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런 대통령이 지금은 무속인들에게 ‘국정 자문’을 받는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종교는 대체 무엇인가. 나는 윤석열 대통령 개인의 종교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를 대하는 아주 무례한 태도에 대해, 민주시민의 한 사람이자 성서학자로서 몹시 불쾌할 따름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를 대하는 바람직한 자세를 전혀 모르는 듯하니, 내가 친절하게 일러주고 싶다.
윤석열 대통령은 절을 가든, 교회를 가든, 성당을 가든, 평범한 불자, 성도, 신도와 다름없이 처신하라. 사진 찍지 말라. 마이크 잡지 말라. 소문내지 말고 가서, 소문내지 말고 떠나라. 언론에 나발 불지 말라. 이 말이 언짢게 들린다면, 절, 교회, 성당에 아예 가지 않는 것도 좋다. 한마디로 말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종교를 이용해 먹을 생각을 버려라.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를 대하는 무례한 태도에 누가 먼저 책임져야 하는가. 두 말 필요없이, 윤석열 대통령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종교를 대하는 무례한 태도에 종교인의 책임은 없는가. 종교 지배층의 책임이 우선 크다. 종교 지배층은 피의자가 검사 대하듯 윤석열 대통령 앞에서 움츠러들지 않았는가. 천지 창조부터 세상 완성까지 통찰하며 순교를 다짐하는 종교인인데, 그까짓 몇 년짜리 권력자가 그렇게 두려운가.
종교 지배층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얻어먹고 싶은 것이 있는가. 얻어먹고 사느니, 차라리 굶어죽는 편이 낫지 않은가. 얻어먹을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 부처가, 예수가 언제 그렇게 가르치더냐. 종교인은 어떻게 하면 권력자와 가까이 지낼까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시민들과 가까이 지낼까 생각하고 노력해야 한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고, 말해야 할 내용을 말하지 않으면서, 구경과 방관으로 자기 책임을 외면하는 종교인이 많다. 시대의 아픔 앞에서 침묵 속으로 도피하는 무책임하고 비굴한 종교인들에게 꼭 들려줄 일화가 있다.
1980년 3월 엘살바도르에서 군인 총에 살해된 로메로 대주교를 위한 장례미사때 생긴 일이다. 독재정권에 치열하게 저항해온 로메로 대주교의 활동을 사사건건 방해해왔던 가톨릭 주교 네 명과 미국 대사의 이름이 대성당 바깥에 내걸린 현수막에 적혔다. 장례미사에 그들의 입장을 금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었다.
주교 네 명은 장례미사에 실제로 입장하지 못했다. 불의한 정치권력에 복종하고 협조해온 주교들이 시민들과 신자들에 의해 심판받은 사건이었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이 독재정권을 지원해온 미국 대사를 심판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느님 심판 이전에 시민들의 심판이 먼저 있었다. 불의한 권력에 굴종하는 종교인을 어느 시민과 신자가 존경하겠는가. 종교인은 불의한 권력에 야합하지 말라. 종교인은 불의 앞에 침묵하지 말라. 종교인은 불의한 권력에 끝까지 저항하라. 시민들과 신자들이 성난 얼굴로 종교인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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