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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비백산 - 魂飛魄散

『법구경』에 실려 있는 ‘독화살의 비유’이다.
붓다의 제자 중에 ‘만동자 (말룬키아풋타, Malunkyaputta)’ 라는 존자가 있었다. 그는 인간의 사후(死後)의 문제에 관해 고민이 많았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를 붓다에게 질문하며, 만약에 스승께서 답하지 못한다면 떠나겠다고 하였다.
​“이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우주는 무한한 것인가, 유한한 것인가? 영혼이 곧 육체인가, 영혼과 육체는 다른 것인가? 내생(來生)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그러자 붓다는 이렇게 되물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 누가 쏜 독화살에 맞았다고 하자. 그런데 독화살을 맞은 사람이 독화살은 뽑지 않고 ‘이 화살을 쏜 사람은 누구이며, 왜 쏘았을까? 이 화살의 재질은 무엇이며, 화살촉의 독의 성분은 무엇일까? 이런 등의 궁금증을 모두 다 알기 전에는 나는 이 독화살을 뽑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였다.
이어서 설하기를 독화살을 뽑는 것이 우선이라 하였다. 인생은 모두 이미 생·노·병·사(生老病死)라는 독화살을 맞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니 화살의 독이 퍼지기 전에 이에 대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설법하였다.
붓다는 이 세상이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치와 법에 맞지 않으며, 수행이 아니므로 지혜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 열반의 길도 아니라 하였다. 붓다가 한결같이 말하는 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괴로움과 그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을 소멸하는 길이다. 한결같이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이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 수행인 동시에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며, 열반의 길이기 때문이다.
『논어』 「선진」 편에는 공자가 제자와 죽음에 관한 대화를 나눈 내용이 있다. 제자 자로가 ‘귀(鬼)’와 ‘신(神)’을 섬기는 것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공자께서 말씀하기를 “사람도 잘 섬길 줄 모르면서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자로가 다시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 하였다.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삶도 아직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하였다.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생사(生死)에 관한 공자의 유일한 대답이다. 공자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중시했다. ‘귀’와 ‘신’을 섬기려거든 인간에 대한 공경, 인간에 대한 정성을 다하고 난 뒤에 그러고도 힘이 남아돈다면 그 뒤에 귀신을 섬기라는 말씀이다.
도마복음 18장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따르는 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 종말이 어떻게 될지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면 너희가 시작을 발견하였는가.” 하고 되물으셨다. 제자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묻자, 예수는 너희가 시작을 아느냐, 시작을 알고 난 뒤에 종말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것인지를 되물은 것이다. 시작이 있어야 종말이 있고, 시작을 알아야 종말을 아는 것이 가능할 것인데, 그 시작을 모르고서 어떻게 종말을 알 수 있겠냐는 말씀이다.
그런 뒤에 “시작에다가 자신의 자리를 두는, 시작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복되도다. 그는 종말을 알아서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동양적 우주관은 ‘혼승백강(魂昇魄降)’이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이 나누어지는데, ‘영혼(魂)’은 천상[우주, 자연]으로 돌아가고 ‘육체(魄)’는 지하의 흙으로 돌아간다는 논리이다. 魂氣歸于天, 形魄歸于地
무릇 종교인은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벗어난 형이상학적 문제나, 과학으로 증명되지 않은 황당한 신통이나 기적 같은 말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신격화된 붓다나, 신격화된 예수에게서 구원과 복을 받겠다는 기복신앙을 버려야 한다. 인간적 모습으로 치열하게 수행하였던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수행하여야 한다.
​나는 과거에 개신교의 보수 교단에서 오래도록 종교 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인간의 생명은 ‘영’과 ‘혼’과 ‘육’이라는 3 원소로 이루어져 있으며, '육'은 죽을지라도 ‘영’은 비물질인 까닭에 절대 죽지 않고 영생불멸한다고 교육받았다. 가공할 만한 협박이다. 그렇다면 내가 이 땅에 태어난 날, 내 생일 이전의 나의 영은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생명의 근원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어제 오후 지하철에서 있었던 해프닝이다. 자칭 전도자라는 불쌍한 인생이 천국과 지옥을 들먹이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협박하기 시작하였다. 치열한 생존의 현장에 있는 승객들의 삶과 고민에 대한 일말의 이해도 없는 자가 대중을 향해 썩어질 세상의 것에 연연하는 불쌍하고 어리석은 인생들이라 매도하였다.
책 한 권 읽은 무식한 놈이 겁 없이 나 대는 꼬락서니가 심히 불쾌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 감히 단언컨대 저 자가 종교를 안다면 저런 무례하고 오만한 짓거리를 해댈 수 있을까?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조차 모르고 마치 자기가 광야의 세례 요한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는 혐오스러운 저 흉물에게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이 있다면 한 바가지 쏟아부어 주고 싶었다. 예수를 팔기 이전에 공동체에 관한 기초적 예절이나 지킬 줄 아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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