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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지역, 문화, 민주주의가 무너진다(1)

최근 김보람 감독의 ‘두 사람을 위한 식탁’이라는 다큐영화가 보고 싶어 상영관을 수소문하다 포기했다. 강원도에는 상영관이 오직 춘천, 그것도 늦은 시간 한 차례뿐이었고 상영관이 여러 곳인 서울도 시간대가 맞는 곳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면 관람조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한 영화제 연대는 “2023년도 한국 영화산업 결산보고에 따르면 독립영화 제작편수는 1574편, 이중 개봉편수는 131편”이라며 산업이 포괄하지 않는 영화는 관객을 어디서 만나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개봉할 수 있는 상영관은 열악하고 관객은 관객대로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한 것이 한국영화가 처한 현실이다. 단관극장에서 다관극장으로 시대가 바뀌었을 때 세련되고 쾌적한 극장 시설에 환호하고 더 많은, 더 다양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지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연애나 동물 키우는 것조차 욕망을 자극하는 산업으로 소비되는 사회에 살면서 거대자본의 위력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게 어디 영화뿐이겠는가. 멀티플렉스 등장으로 ‘극장문화’는 사라지고 선택권이 줄어든 관객은 문화향유자로서 설자리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러나 멀티플렉스를 소유한 대기업 투자자본도, OTT 플랫폼의 발전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영화관을 떠났던 관객들이 좀처럼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다양성을 배제한 결과 극장도 위기의 시대이기는 마찬가지다. 문화는 태생적으로 진보적 성향일 수밖에 없고 특히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모든 계층이 비교적 용이하게 접근하는 영화는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특징 때문에 자본의 타깃이 되고, 보수정부가 집권할 때마다 문화파괴의 대표적인 타깃이 되어왔다. 보수 정치세력이 권력을 잡으면 시대정신을 담아낸 영화를 보러 시민들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배제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미 이명박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서 확인한 바 있다.
지난 10월 30일 원형을 보존한 마지막 단관극장이라는 희소가치에도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제 철거된 원주 아카데미극장 사태도 본질은 같다. 지역의 문화유산을 시민의 참여로 되살리고자 한 민관 거버넌스의 모범을 만들어냈음에도, 진지한 대화와 토론도 없이 공적 가치를 외면한 민선 8기의 원주시는 시민주권을 무시한 정치적 부담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극장이 무너진 후 곳곳에서 탄식이 이어지는 것은 비단 철거된 건물 때문만은 아니다. 아카데미를 지키고자 한 시민들이 공들여온 것은 낡은 건물이 아니라 문화 커뮤니티의 장을 되살릴 수 있는 유무형의 가치들이었고, 연대해온 영화인들에게는 마지막이 될 근대 극장 하나쯤은 지켜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사회를 점령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시대적 흐름 한가운데에서 지역 내 진영논리와 지역의 낡은 기득권 세력, 넓게는 위기의 한국 영화와 거대자본이라는 다층적인 시대적 과제 앞에 오직 진정성과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로 버틴 시민들은 무력했다. 그리고 탑다운 방식의 낡은 통치행위를 멈춰 세우고 공론화 과정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도 부족했다. 지역사회의 민주주의 역량과 갈등관리 능력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그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인 마당에 대관절 극장이 무엇이기에, 그 낡아빠진 건물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집착하는가 하고 말이다. 극장이란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이 고안해낸 극장은 연극을 상연하고 때로 민회와 재판이 열린 곳으로 애당초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극장에서 상연되는 비극을 통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에 대해 성찰했으며 60년대를 전후로 중소도시에도 한두 개쯤 있던 우리의 극장 또한 한국전쟁 이후 어려웠던 시절 지역공동체가 존재하는 방식이자 현장이었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은 말년에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에 있던 고려극장의 수위로 일했다. 1932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 고려인 사회에서 활동하던 예술단에서 시작한 고려극장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함께 이전되어 카자흐스탄 고려인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한 공연예술단체이자 극장이다. 멀티플렉스 이전 단관극장은 영화를 상영하는 동시에 지역사회 공동체의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기능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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