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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지난달 7일 이후 최근까지 미국 언론의 논조를 보면 마치 암을 선고받은 환자와 같은 심정이 느껴진다. 뉴욕타임즈는 사설에서 미국 패권이 사라진 “다극 시대가 도래했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은 3개의 전쟁을 치를 수 없다”고 탄식했다. 포린폴리시 11월 16일자 온라인판은 미 국무부 유라시아 담당 전 차관보 A. 웨스 미첼(A. Wess Mitchell)의 “미국은 패할 수도 있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기고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에 동시에 대비해야 하는 미국은 대만해협과 같은 동아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재정 부담과 무기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진 지 1년 8개월이 지났지만 미국의 방위산업 생산량은 10%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기고문은 미국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잘못 관리할 경우 전쟁 수행비용이 GDP의 200%에 육박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제 미국이 세계의 경찰이라는 건 옛말이다.
미국은 자신만의 확증편향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위험한 정책을 추진해 왔다. 그 첫 번째는 지난 30여 년의 자유주의 질서를 재구성한다며 무덤 속에 있던 지정학을 부활시킨 데서 발견된다. 동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지 않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확장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중동에서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어떤 진정성도 없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관계를 정상화하여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견제하는 미국의 회랑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팔 전쟁이 벌어졌다. 이 두 개의 전쟁은 미국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당 지역의 질서를 무리하게 변경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두 번째는 미국이 특정 국가를 국제질서로부터 추방하고 고립시키기 위해 각종 제재를 남용했다는 점이다. 북한, 이란과의 갈등을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가혹한 경제제재를 남발하였고, 이제 그 제재의 칼날은 러시아에게로 확장되고 있다. 제재의 남용은 세계적 부를 감소시키고 시민의 생존을 위태롭게 하며 안보의 위기를 구조화했다.
최근에는 과거 대공산권수출통제제도(COCOM)를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칩과 과학법, 인플레감축법(IRA)으로 중국에 대해 기술을 통제하려 한다. 제재와 통제를 무기화한 미국이 막대한 부와 기회를 창출한 자유무역 체제에 도전하며 자국의 중산층만 보호하려 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제재와 통제는 복잡한 공급의 신경망을 모니터링하고 외과수술과 같은 정밀성을 요구하는 사안임에도 미국은 과거 냉전시대의 통제 제도를 답습한 법령만 내놓았다. 인위적인 공급망 재편이라는 건 마치 심장과 간의 위치를 바꾸는 것만큼 위험한 수술이다. 이런 공급망 재편에 글로벌사우스(개발도상국)는 더 이상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
세 번째는 현실과 괴리된 미국의 자국 중심주의와 기계적 세계관이다. 2021년 아프가니스탄 함락 직전인 7월 중순에 마크 밀리 합참의장은 상원에서 “카불은 사이공이 아니다”라며 30만 정규군을 보유한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무너지지 않는다고 증언했다. 베트남전 당시보다 더 치욕적으로 미군이 아프간에서 패주하는 데는 열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에 마크 밀리는 상원에서 “키이우는 72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며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미국은 대응하지 못한다고 증언했다.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크라이나는 무너지지 않았다.
망하는 정부는 안 망한다고 하고 안 망하는 정부는 망한다는 미국의 군 서열 1위는 지금까지 해명을 내놓지 못한다. 제이크 설리반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일어나기 6일 전에 “중동은 20년 만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며, 곧 성사될 이스라엘-사우디 관계 정상화 이후 유럽에서 중동을 거쳐 아시아로 이어지는 번영의 회랑이 탄생한다고 예고했다. 미국이 천진난한 꿈에 젖어 있는 동안 중동은 50년 만에 가장 끔찍한 전쟁터로 변했다.
지정학에 의한 현상 변경, 제재의 남용, 주관주의로 인한 정보와 위기대응의 실패는 미국에게 거대한 추락을 의미한다. 이 추락에 한국은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 11월 15일부터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는 미·중이 군사 핫라인을 회복하는 등 의미 있는 협력을 도모했다. 그러나 장벽을 허물고 자유로운 무역과 경제적 상호의존을 강화하려는 세계의 열망으로부터 미국은 서서히 고립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