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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외면하는 윤석열의 ‘가치외교’(2)

한국, 독일, 일본 등이 미국의 공급망 정책을 지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경제가 안보 논리에 종속되어 진영화·블록화되는 데 반대한다. 특히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간의 전략 경쟁으로 인한 기술과 시장의 분할을 수용하지 않는다.
20225월에 막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도 안보라며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가입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13개국이 참여한 IPEF는 무역에 관한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했으며, 디지털 협력을 위한 표준도 제정하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전자정부 시스템 미비와 의사결정 과정의 부정부패로 인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조달, 공여조차 애로 사항이 많았다며 협력의 어려움만 하소연하고 있다. ‘탈중국을 외치며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미국에 편승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은 섣부른 공급망 재편이 재앙이 될 것이라는 냉혹한 결론을 감수해야 할 판이다.

작년부터 윤석열 정부는 자유무역체제에서 경제적 상호의존이 선사하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한미일 안보협력과 이념과 가치에 기반 한 외교, 경제의 안보화와 같은 위험한 정책을 남발해 왔다. 미국과 일본을 대리하여 중국에 대한 막말을 퍼붓고 안보 논리로 경제를 통제한 결과는 중국·러시아와의 외교단절 상황이었다. APEC 정상회의 기간인 1117일에 일본 기시다 총리와 시진핑 국가 주석은 양자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양국 사이엔 영유권 분쟁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 문제,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방류 문제, 중국의 일본인 구속 문제 등 산적한 다양한 현안에도 불구하고 양국 정상은 호혜적 협력을 약속했다.


반면 중국과 거리두기를 지속해 온 한국은 이번
APEC 정상회의에서 한중 정상회담을 타진했지만 중국으로부터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선 채로 시진핑 주석을 3분간 만나 몇 마디 덕담을 한 것이 전부다. 지난 8월부터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추진한다고 말해왔고, 이번 APEC 회의에서도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모색한다고 했음에도 아무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 한국 경제는 일본에 성장률을 추월당했고, 저성장과 침체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현안은 누가 뭐래도 중국과의 관계 회복이다
. 미국과 유럽,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이 점을 인식하고 중국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시기에 윤 대통령만 동떨어져 있다. 아직도 윤석열 정부가 실용이 아니라 반중국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철지난 이념과 동맹 외교가 지난 3년간 미국의 실패를 촉진하는 걸 지켜보고도 그 실패를 답습하는 한국의 처지를 이해해 줄 착한 나라는 없다. 더 황당한 것은 세계가 불안하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며 지정학적 위험이 다가오는 시기에 윤석열 정부는 남북 간에 합의된 9·19 군사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1113일에 서울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신원식 국방장관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할 필요성을 설명했는가 보다. 언론에 보도된 바로도 미 측은 한국 정부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고 경청만 했다. 가뜩이나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의 불안이 고조된 시기에 미국도 더 이상 동아시아에서 분쟁 요인을 만들지 않고 중국과 화해하려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한국이 나서서 지정학적 위험을 고조시키고 한반도의 안정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정책에 미국이 동의했을 리가 없다
. 그러나 국방부는 올해 예정된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가 이루어지면 곧바로 합의를 무력화하고 전방에 감시정찰 드론을 대규모로 투입하거나 서북해역 북방한계선(NLL) 부근에 대형 함정을 투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연쇄적으로 판문점 남북합의까지 무력화되어 확성기 방송과 대북전단 살포로 이어질 위험도 매우 크다고 보아야 한다.


거침없이 전쟁을 향해 돌진하는 윤석열 정부는 미국에게도 자산이 아니라 짐이다
. 게다가 최근 보수우파를 중심으로 다시금 한국의 핵 무장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쯤 되면 미국과 중국은 한국에게 화를 낼 것이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표방하고 순방은 민생이라며 거의 매달 해외를 나가는 대통령이 실은 외교에서 실패하고 고립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 시점에 우리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음을 뼈아프게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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