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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정치권력에 복종해야 한다고?

세상의 독재자들이 신약성서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다. 종교 사기꾼들이 신도들을 속이기 위해 즐겨 인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선하고 의로운 그리스도인, 예수나 그리스도교에 호의적인 사람, 심지어 성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종교인도 쉽게 걸려 넘어지는 성서 구절이다.
“누구나 자기를 지배하는 권력에 복종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지 않은 권력은 하나도 없고 세상의 모든 권력은 다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거역하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거스르는 자가 되고 거스르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로마서 13,1-2)
국가권력에 대한 바울 설명은 2000년 전 그리스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국가이념에서 나왔다. 선한 국가권력은 선행을 격려하고 악행을 벌한다는 생각이었다. 국가 권력을 존중할 의무에 바울은 두 가지 근거를 내세웠다. 통치자들은 선을 권장하고 악을 처벌하는 존재라는 윤리적 설명이 먼저 나왔다. 국가권력은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신학적 설명이 뒤따른다.
하느님이 권력을 만드셨다면, 사람이 권력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느님이 만드신 국가권력에 반항하는 것은 하느님의 원수가 되는 셈이다. 하느님의 명령에 맞서는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또한 하느님이 권력을 만드셨다면, 권력은 오직 하느님에게만 속한다. 권력을 하느님께 받은 권력자는 하느님과 같은 권위를 가진 것은 아니다. 권력자는 하느님이 아니고, 많은 인간 중에 하나일 뿐이다. 유다교 사상은 권력자가 하느님을 대표한다는 생각을 허용하지 않았다.
모든 정치권력이 자기 멋대로 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국가권력은 자신이 하느님 뜻대로 행동하는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지 늘 돌아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치권력과 정권을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권력은 결국 하느님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하느님이 특정한 정권을 세우신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이 선한 사람을 칭찬하고 악한 사람을 처벌한다면, 그 국가권력은 하느님의 도구라고 불릴 만하다. 그러나, 모든 국가권력이 자동적으로 하느님의 도구인 것은 아니다. 국가권력이 하느님을 대신하는 것도 아니고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권력은 하느님의 도구이지 하느님의 대표는 아니다. 악한 도구도 있고 선한 도구도 있다.
사람이 권력자를 존중하는 것처럼, 권력자는 하느님을 존중해야 한다. 권력자는 피지배자보다 하느님에게 더 가까이 있지는 않다. 마치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자신을 선전하면서, 자신도 많은 사람 중 겨우 하나라는 사실을 모른 체한 권력자들이 역사에 많았다.
바울은 로마 13,1-7을 정치 권력자가 아니라 예수운동 공동체에게 주었다. 만일 바울이 정치 권력자에게 편지를 썼다면, 다음 말씀을 인용했을 것이다.
“지상의 통치자들이여, 정의를 사랑하여라.”(지혜서 1,1)
‘주님의 나라를 맡은 통치자로서 그대들이 정의로 다스리지 않았거나 법을 지키지 않았거나 하느님의 뜻에 맞게 처신하지 않았으면, 주님께서 지체없이 무서운 힘으로 그대들을 엄습하실 것이다.“(지혜서 6,5)
“권력있는 자들에게 준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미천한 사람들은 자비로운 용서를 받겠지만, 권력자들은 엄한 벌을 받을 것이다.“(지혜서 6,5)
어떤 국가권력 아래 있든, 악행을 하는 사람은 국가권력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고, 선행을 하는 사람은 국가권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악행을 저질러도 불의한 국가권력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선행을 해도 불의한 국가권력에게 탄압받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부패한 대한민국이 너무나 편하고 살기 좋은 사람들이 있고, 공정한 대한민국을 애타게 기다리며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불의한 정치권력에도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는 말을 예수도, 바울도, 그리스도교도 한 적이 전혀 없었다. 로마서 13,1을 인용하며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 윤석열 정권에는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강변하는 일부 목사들은 노무현 정권, 문재인 정권에게는 삿대질하며 비난한 바 있었다. 그들은 로마서 13,1을 악용하고, 바울을 모욕하고, 예수를 팔아먹고 있다.
개신교 윤리신학자 박충구 교수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나치 장교들이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며, 음악과 교양과 기독교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들과 다를 바 없는 교회 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며 “악에게 저항할 줄 모르는 무능과 침묵의 죄가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감추어져 있다”고 탄식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며 누구나 절실하게 느꼈으리라.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반란군에 맞서 싸웠던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 2006년 공개한 ‘육필 수기’에서, 그는 자신을 회유하던 유학성과 통화에서 “너는 끝까지 그따위 처신으로 군인 생활을 마칠 것인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악에게 저항할 줄 모르는 무능과 침묵보다 더 큰 죄가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우리가 불의한 정치권력에 복종할 필요는 전혀 없다. 불의에 대한 저항은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저항 없는 탄식과 분노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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