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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시스템은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좋은 선거제도’이다. 현대의 대중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정당정치이다. 정당이 정치 서비스를 공급한다. 정당은 저마다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하며 유권자는 자신의 소망과 요구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정당에게 표를 준다. 5퍼센트 득표율이라는 진입장벽이 있어서 일부 유권자는 의회에 자신을 대표하는 정당이 없다고 느끼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독일 선거제도는 정치가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소망과 요구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반영하고 실현하도록 북돋운다. 절대적 최선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실행할 수 있는 ‘좋은 선거제도’라는 건 분명하다. 동유럽 국가들이 독일 제도를 받아들인 데는 충분한 이론적 근거가 있었다.
우리의 선거제도는 어떤가? 이 기준에 비추면 좋지 않은 제도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 다수제로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다. 의원 정수의 1/6도 되지 않는 비례대표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분배했다. 지역구 당선자를 많이 내지 못한 정당은 정당투표에서 10퍼센트 훨씬 넘는 득표를 해도 원내교섭단체를 만들 정도의 의석조차 받지 못했다. 반면 보수 진보 두 진영을 대표하는 거대 정당들은 득표율보다 훨씬 많은 의석을 차지하곤 했다. 독일이 이런 제도였다면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은 집권당이 되기는커녕 연방의회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1988년 이후 지금까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다양한 요구와 소망이 있는 그대로 국가 운영에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매우 ‘좋지 않은’ 선거제도를 유지해 왔다.
4년 전 민주당은 작은 정당들과 함께 국힘당의 반대를 뚫고 힘겹게 선거법을 개정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지역구 당선자가 거의 없지만 정당득표율 3퍼센트를 넘는 정당에게 비례의석을 우선, 그리고 더 많이 배정하는 제도였다. ‘나쁜 선거제도’를 ‘덜 나쁜 선거제도’로 개선한 것이다. 자기 당의 비례의석이 줄어들 것임을 알면서 한 일이니 칭찬해 마땅한 행동이었다.
국힘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동의한 적이 없다. 21대 총선에서 당당한 태도로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 위성정당은 득표율 33.84퍼센트로 비례의석 19개를 차지했다. 민주당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한발 늦게 연합위성정당을 만들었다. 그 정당은 득표율 33.35퍼센트로 17석을 얻었는데, 당선자 몇은 각자 소속 정당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시종일관 민주당과 싸우다가 결국 국힘당으로 이적했다. 전투적 자유주의 성향의 열린민주당은 5.42퍼센트로 3석, 정의당은 9.67퍼센트로 5석, 국민의당은 6.79퍼센트로 3석을 받았다.
국힘당은 위성정당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얻었는가? 민주당도 위성정당을 만들었기 때문에 별 이익은 없었다. 지역구 84석과 위성정당 비례 19석을 합쳐 103석을 획득했는데, 완전한 독일식 제도였다 하더라도 딱 그 정도 의석을 받았을 것이다. 민주당은 지역구 163석과 위성정당 비례 17석으로 180석을 획득했다. 더불어시민당 당선자 일부가 소속정당으로 돌아갔지만 열린민주당 3석을 고려하면 180석을 그대로 인정하는 게 맞을 것이다.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을 포함해도 정당득표율은 39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는데 의석은 의원 정수의 60퍼센트를 받았다. 독일식 제도라면 120석밖에 되지 않을 텐데 득표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의석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손해를 보았는가? 정의당과 국민의당이다. 지지율에 비해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의석을 받았다.
국힘당은 이번에도 위성정당을 만들 것이다. 사실 굳이 만들지 않아도 진영으로 보면 크게 손해 볼 일이 없다. 국힘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민주당도 만들지 않는다. 두 정당 모두 비례대표 후보를 등록할 경우 두 당을 찍는 정당표는 사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점을 알기 때문에 두 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일부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과 원내에서 긴밀히 협력할 다른 정당을 골라 정당투표를 할 것이다. 다른 정당들은 저마다 그런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원내 활동의 노선을 밝히고 경쟁할 것이다. 국힘당과 민주당은 그런 정당들과 22대 국회에서 연대 협력하면 된다.
그렇지만 국힘당은 위성정당을 띄울 것이다. 진영 전체가 아니라 국힘당의 의석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국힘당 비례위성정당은 내년 총선의 상수(常數)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국힘당의 태도는 분명하다. “우리는 정당 득표율대로 비례의석을 배분하는 병립형으로 돌아가기를 요구한다. 민주당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위성정당을 만들겠다. 윤석열 정부를 지키려면 원내 제1당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끝까지 반대했던 정당으로서 당연히 취할 수 있는 태도라고 본다.
민주당의 선택지는 이론적으로 넷, 실제로는 둘이다. 이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대안은 선거법을 개정해 위성정당을 확실하게 금지하는 것이다. 예컨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는 정당은 지역구 후보 등록을 취소하도록 하는 방안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 후보만 내는 것은 허용하지만 지역구 후보만 내고 비례 후보를 내지 않는 것은 금지하는 방안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