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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자 '기본소득’(1)

사회개혁의 과제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 입장에서 사회개혁의 최우선 과제는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세계 1위가 된다 해도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런 사회를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복적으로 강조하지만, 한국인들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두 가지 불안은 고립적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다. 사람들을 고립적 생존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사회제도를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제도로 개혁해야 한다. 사람들을 존중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개인 간 불평등 문제(개인 간 서열 경쟁, 개인 간 내전)를 해결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계급 간 불평등 문제(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개혁의 가장 큰 방해 요인은 주로 돈에 대한 과도한 욕망으로 표현되는 이기주의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이기주의자는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자기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이기주의자는 자기 집값이 오르는 것에는 아주 민감하지만 사회개혁에는 거의 관심이 없는 사람인 것이다. 이기주의는 필연적으로 사람들 간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이기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와 단결이 불가능해진다.
사람들이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있으면 그들의 시야는 ‘자기’라는 협소한 울타리에 갇히게 되며, 자기한테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 혹은 능력이 없다는 무력감과 패배주의에 빠지게 된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국민의 능력이나 힘은 그들이 뭉쳤을 때 현실화된다. 개인으로 파편화되어 있는 한 그들은 세상을 바꿀 수 없는 순종적이고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이것은 한국인들이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회개혁이 요원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들을 이기주의자로 만드는 원인은 고립적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좋을까? 대답은 전자이다. 한국 사회는 개인 간 서열 경쟁, 개인 간 내전으로 인해 인간관계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어 있다. 다층적 위계 사회인 한국에서 개인 간 서열 경쟁과 전쟁은 단지 개인 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도 벌어진다. 이기주의자들이 서열 집단을 이루고 있거나 각종 이슈나 이권을 매개로 무리를 지음으로써 다양한 집단들이 갈등하고 충돌하고 있는 곳이 한국 사회이다.
정규직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던 ‘인국공 사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상위 서열 집단은 하위 서열 집단의 지위 상승이나 처우 개선에 반대한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다층적 서열 피라미드 사회 혹은 개인 간 서열 경쟁 사회에서 하위 집단의 서열 상승은 곧 자기 집단의 서열 하락을 의미하고, 윗서열한테 무시당하며 살기에 내가 무시할 아랫 서열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불평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으면서도 불평등을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용인하는 심리가 강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개인 간 혹은 집단 간 불평등(존중 불안)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면 노년층에게 유리한 정책은 청년층이 반대하고, 여성에게 유리한 정책은 남성들이 반대할 수 있기 때문에 이기주의로부터의 해방 없이는 불평등 문제를 먼저 해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사회개혁은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져야 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연대하고 단결할 때 가능해진다. 기본소득은 한국인들을 이기주의에서 해방시키고 하나로 뭉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하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이기주의자가 되도록 강요하는 주범이다. 기본소득은 생존 불안을 크게 줄여주거나 없애줌으로써 사람들을 이기주의에서 벗어나도록 해줄 것이다. 기본소득은 무엇보다 이기주의를 떠받치고 있던 두 개의 기둥(고립적 생존 불안과 존중 불안) 중에서 하나를 무너뜨린다. 어떤 이들은 그럴 경우 이기주의가 단지 반 정도만 약화될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건물을 떠받치던 두 개의 기둥 중에서 하나가 무너지면 그 건물이 붕괴되기 마련이고, 두 바퀴로 달리던 자전거의 바퀴 하나가 없어지면 그 자전거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기본소득은 생존 불안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기주의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킬 것이 확실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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