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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가 해체될 가능성이 있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유럽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생존을 꾀해야 할 것이다. 각 회원국은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의 2% 이상으로 끌어올리게 될 것이다. 유럽의 주요 국가는 방위산업을 강화하고, 군사적인 역량도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재등장으로, 유럽연합은 명실상부한 정치, 경제 및 군사 블록으로 성장할 기회를 얻게 된다.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그동안 동유럽 국가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의 힘으로 유럽의 평화를 지키려고 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유럽이 다시 독립적인 세력으로 자라나기를 꿈꾸었다. 독일은 프랑스와 동유럽 국가들의 중간 어딘가에 서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유럽은 치열한 내부 갈등을 겪으며 새로운 진로를 마련해야 한다.
다섯째,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는 망한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복귀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점령’에 무관심한 편이다. 현재까지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유럽연합도 바이든 대통령의 요구에 떠밀려 우크라이나를 후원하였다. 그러나 트럼프가 재등장하면 유럽은 금세 등을 돌리고 말 것이다.
여섯째, 중국 문제이다. 트럼프도 바이든도 중국을 국제사회에서 봉쇄하는데 정열적이었다. 미국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모두 중국을 잠재적 적대국가로 간주한다. 만약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되돌아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중국에 대해 좀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독일 등 유럽 여러 나라도 트럼프의 대중국 전략을 상당히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다.
길게 유럽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저 그런 이야기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유럽의 경우가 우리의 대미외교에 있어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만 하다는 생각이다. 내 생각을 간단히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본다.
첫째, 우리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각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종래 한국정부의 대(對)강대국 외교를 보면 상대방의 노선에 무조건 따르거나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윤석열 정권 들어 그런 양상은 더욱 심해졌다. 미국에 대해서는-이젠 일본에게까지도- 무조건 따르고 중국과 러시아와는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국력이 약했던 예전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한국은 여러 지표로 보아 프랑스나 영국 비슷한 수준의 나라이다. 이제는 달라진 위상에 걸맞은 외교를 할 때가 되었다. 바이든이 계속하든 트럼프가 오든 그런 변화가 가져오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통령뿐 아니라 외무부의 고위 관리들 포함 정관계 고위층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미국 입법부와 행정부를 상대로 접촉면을 넓혀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여기서 우리 국가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한반도에서 남북 대화를 단절하고 전쟁의 기운을 조성하는 것이 국익인가, 아니면 미국 및 일본과 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평화를 유지하는 방도를 찾는 것이 우선인가. 이 중차대한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남북문제와 주변의 4대 강국을 바라보는 시선만큼은 정당의 차이를 뛰어넘는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 내년 총선 국면에서 서로 의석수를 놓고 아웅다웅 하지만 말고 이 문제에 대한 여야 간 깊이있는 토론과 그 결과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미국 대선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한층 여유로워질 것이 틀림없다.
셋째, 장기적으로 대미 일변도 외교를 벗어나야 한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가 우리에게 중요한 상대인 것은 틀림없으나, 이제는 그들에게 지나치게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가 되었다. 아세안(ASEAN)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으며,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및 중동지역에서도 우리와 보조를 함께 할 수 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다. 지금 당장에는 신냉전의 기류가 강하게 조성되어 세상이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양분된 것같이 보이나, 실은 세계가 다극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년 8개월 가까운 윤석열 정권 외교노선을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