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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단’에서 ‘말리는 시누이’로, 친윤 매체의 몸부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시집살이 심하게 하는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심하게 구박받을 때, 시누이가 말리는 척하면서 시어머니 편을 들 때 쓰는 말입니다.

속담에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직장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비슷한 일을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겁니다. 예를 들어, 한 직원이 상사한테 ‘시킨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꾸지람을 듣는 중입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촉새 같은 선배가 불쑥 끼어들어 꾸중하는 상사를 뒤로 밀쳐내며 직원에게 “내가 뭐라고 그랬어, 진작부터 일 처리 좀 꼼꼼하게 하라고 그랬지”라고 설레발을 놓습니다. 직원은 상사에게 변변한 항변도 못 한 채 졸지에 무능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상황이 끝납니다. 이때 정신이 제대로 박힌 직원이라면, 선배의 절묘한 개입으로 상사의 꾸중을 모면해 다행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질책을 피하게 해주는 척하면서 자신을 무능력자로 만든 촉새 선배에 대한 적개심이 활활 타오를 겁니다.

최근 위기에 빠진 윤 정권을 배경으로, ‘때리는 시어머니, 말리는 시누이’ 속담을 방불케 하는 일이 무대극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며느리, 윤석열 정권을 시어머니, 친윤 매체를 시누이라고 생각하고 상황을 짚어봅시다.

올해 윤 정권이 국내에서 한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검찰 정권답게 검찰 친위대를 총동원해 ‘이재명 죽이기’에 몰두한 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이재명 죽이기’ 못지않은 악행은 ‘언론 죽이기’입니다. 윤 정권은 박민의 <한국방송> 체제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태에서 알 수 있듯이 공영방송을 ‘친윤 방송’ ‘땡윤 방송’으로 재편하는 작업과 함께, <뉴스타파>를 필두로 한 비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데 혈안이 돼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올 1년 동안 역대 최대 경비(578억원)를 쓰면서 역대 최다(13차례)로 해외를 쏘다녔는데도 불구하고 그렇습니다. 외정의 실패에서 단연 첫손가락에 꼽히는 사건은 ‘2030 부산 엑스포’ 유치전의 참패입니다. 무려 5744억 원을 처들이면서 겨우 29표를 얻는 데 그친 ‘비용 대비 효과’의 처절함은 둘째 친다고 해도, 투표 결과 발표 직전까지 119표를 얻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역전승을 거둘지도 모른다는 환상 아래 축하연과 축하공연까지 준비했다는 ‘정신 승리법’의 사고는, ‘설명 불가’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사우디의 압승을 예견한 상태였는데도 말입니다. 정보 수집력과 판단력이 이토록 고장난 윤 정권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에게 과연 이 나라의 안위에 대한 책임을 맡겨도 될 것인지 심히 의문을 품게 합니다.

내·외정에서 윤 정권의 복합적인 실패가 수치로 나타난 것이, 윤 대통령에 대한 ‘30%대 지지- 60%대 반대’의 고착 현상입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최근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선택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체제입니다. 윤 정권이 국민의 생활과 복지, 안위는 안중에도 없이 권력의 단맛을 즐기다가 내년 총선에서 참패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꺼내든 최후 수단이 ‘윤 대통령의 아바타’ 한동훈 당겨쓰기인 셈입니다. 이렇듯 ‘시어머니’ 윤 대통령이 ‘며느리’ 국민을 핍박하다가 궁지에 몰려 있는 차에, 갑자기 ‘시누이’ 친윤 매체들이 등장해 시어머니 돕기 맹활약을 벌이고 있는 상황, 이것이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희극입니다. 그동안 내정과 외정에서 윤석열 정권이 하는 일에 기득권 동맹의 일원으로 이인삼각이 되어 아낌없이 응원해 온 조·중·동을 비롯한 친윤 매체들이 갑자기 윤 대통령 부부를 비판하는 시늉을 하면서 한동훈 띄우기에 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윤 매체들이 그때그때 언론 본연의 감시견 노릇을 충실하게 했다면 부산 엑스포 참패도, 한동훈 비대위 출범도 없었을 터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일조한 실정의 결과로 내년 총선에서 윤 정권의 참패 가능성이 커지고 그들도 함께 죽게 생겼으니 짖는 척이라고 해야겠다고, 아니 지지 않도록 훈수를 둬야겠다고 작정하고 나선 것입니다.

김건희 씨가 명품 가방을 받았다는 기사는 ‘함정 취재’, ‘유튜브 기사’라고 폄훼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비난 여론이 비등하자 뒤늦게 김 씨를 사저로 유폐시켜야 한다는 둥 쓴소리를 하는 걸 보니, 친윤 매체들이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 비아냥과 깐죽거림을 입에 달고 사는 한동훈 씨를 감히 이순신·강감찬 장군에 빗대는, 저들의 혹세무민성 찬사를 그대로 옮기며 국민을 현혹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의 최측근 노릇을 충실하게 해온 그를, 윤 대통령이 초래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영웅이라도 될 것처럼 추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는 그 속내를 너무도 잘 압니다. 시누이가 시어머니를 말리는 척하지만, 실은 그가 시어머니보다 더욱 악랄하게 자신을 괴롭히는 악질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친윤 매체가 지금 위기에 빠진 ‘윤석열-김건희-한동훈 이익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하고 싶지도 않은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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