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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부른 2023년 윤석열의 망상 외교(2)

그 직후 미국의 외교전문지 <디플로매트>는 기사 말미에 의미심장한 분석을 내놓는다. "윤 대통령이 중국과 갈등을 빚은 것이 아프리카를 소원하게 했는데,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긍정적인 세력으로 인식되고 있다"면서 "중국이 아프리카와 중남미 일부 국가들에게 부산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한중관계의 경색이 엑스포 유치 실패로 이어지는 국제정치 맥락을 짚어낸 이 기사는 한국의 외교력과 정보력의 심각한 결함도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은 외교력과 정보력을 잠식하는 대통령실의 자기 최면과 망상이 바위처럼 버티고 있는 한 있는 능력마저 발휘될 수 없다.
2023년의 한국 외교는 재앙이었다. 과거에 한중관계는 마늘 파동이나 사드 배치, 이어도 영유권 논란 등 구체적인 악재가 있을 때 긴장을 경험한 바 있다. 이런 악재는 대부분 해소되었고 한중관계는 회복력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에서는 특별한 악재가 없었음에도 오직 말과 생각만으로 소모적인 갈등을 자초하다가 이제는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러시아마저 한국에 등을 돌린 지금 한반도와 대륙을 잇는 교량은 끊어진 상태다.
2023년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국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아무리 전략 경쟁을 격화시킨다 해도 다극화된 세계는 강대국 정치만으로 설명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국가는 이념이나 진영이 아닌 국익과 실용을 바탕으로 자국 우선의 외교를 펼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이 가치 외교를 명분으로 대륙과 단절을 선포하고 고립의 길에 들어섰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아무리 극우 보수정권이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극단적 이념 외교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에는 이익은 없고 이념만 있다.
윤 정부 외교의 가장 파국적인 요소는 대통령 한 명의 위신을 세우는 데 국익을 희생한다는 점에 있다. '영업사원 1호'를 표방한 윤 대통령은 2022년에 원전, 방산, 인프라에서 자신이 500억 달러 규모의 해외 수주를 달성하겠다고 큰소리친 적이 있다. 재벌 회장들을 10여 차례 해외 순방과 국내 행사에 동원하면서 대통령의 영업실적을 돋보이게 하려다가 탈이 난 사업은 폴란드 무기 수출이다. 이 수출의 내막이 밝혀지면 2024년에 한국 외교는 전대미문의 충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까지 수출입은행과 예금보험공사를 동원해 폴란드에 공여한 차관이 5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법을 바꿔 여신 한도를 더 늘리겠다는 게 대통령실의 의도다.
이마저도 모자라서 100억 달러 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폴란드 2차 무기 수출을 성사시키기 위해 시중 5개 은행에게 폴란드에 대한 장기 저리 대출을 압박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전임 정부의 무기 수입 계약을 재검토하겠다던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는 최근에는 "한국과 계약을 존중하겠다"고 말을 바꾸더니, 한국에 대해 "한국이 약속한 금융지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계약을 이행하라"고 거꾸로 압박을 가하는 모양이다. 도대체 윤 대통령이 폴란드에 가서 뭘 약속했기에 폴란드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는지, 그 내막이 궁금해질 따름이다. 아마도 윤 대통령이 영업사원 1호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정부 산하 금융기관과 시중은행까지 동원하여 파격적으로 폴란드에 금융지원을 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결렬되었어야 할 위험한 무기 거래다. 2024년에 이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책임있게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 개인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미국과 영국 등 주요국에 남발한 수백억 달러의 투자 약속을 제외하고도 허공에 뿌린 5700억 원 엑스포 유치 관련 예산, 공적개발기여금과 인도적지원 증액분 1조 4000억 원, 폴란드에 대한 대출 지원까지 얼마나 많은 국고가 낭비된 것인지는 추산하기조차 어렵다. 영업사원을 자처하면서 흥청망청 국고를 유용하는 낭비벽이 심한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그에 상응하는 성과를 거의 발견할 수 없다. 이 위험한 영업사원이 2024년에도 세계를 휘젓고 다닐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는 말 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차라리 가만있으니 만도 못한 오지랖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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