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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도, 구럭도 다 잃은 윤석열 대일 외교(2)

구랍 21일 대법원판결 직후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의 추가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일본)정부 차원에서 민간에게 자발적인 기여를 독촉하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저희도 그런 관점에서 좀 더 진전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며 여전히 일본 측의 선의만 기대하는 자세를 보였다. 구랍 26일 한일 외무차관보급 면담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일본 측이 보여준 태도를 보면 윤석열 정부의 순진한 기대는 실현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 측은 윤 대통령의 기대와 정반대 행동을 보였다. 작년 5월 7일 방한한 기시다 총리는 공식이 아닌 개인 의견을 전제로 피해자들에게 "힘들고 슬픈 경험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을 뿐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그 뒤 일본 측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계획 발표, △왜곡 역사교과서 검정 통과, △독도 영유권 주장, △기시다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공물 봉납 등 ‘나머지 반 컵’을 채우기는커녕 오히려 한국민을 자극하는 조치를 잇달아 취했다.
대법원판결에 대해서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내보였다. 구랍 21일의 대법원판결 직후 나마즈 히로유키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해 항의하면서 "대법원판결을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한일정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으로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제3자 변제)에 맞춰 한국정부가 대응해 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랍 28일의 대법원판결 직후에도 일본 측은 동일한 반응을 보였다.
이제 윤석열 정부에게 남은 일은 무력화된 제3자 변제안을 유지하기 위해 일본 측의 선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게 되버렸다. 일부 국내 일본 전문가는 일본이 '물컵의 나머지 반'을 채울 의사가 없다기보다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이 너무 낮아 동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약속하거나 양해를 구해온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순진하고도 한심한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 해서 자충수를 두게 되었나? 윤석열 정부는 정략적인 목적에서 한일관계의 악화 이유가 전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겼고, 이는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책을 갖고 오라'는 일본 측의 프레임에 말려드는 결과로 이어졌다. 실제로 2022년 9월 한덕수 총리는 기시다 총리를 만난 뒤 공개석상에서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며 일본 측 주장을 수용하는 발언을 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두 가지 논리를 내세워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하나는 대법원의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배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합의한 것을 뒤집었기에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가 청구권 협정 제3조의 분쟁해결절차를 따르지 않아 국제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한심한 작태로 인해 한국이 국제법을 어겨 해법을 제시하는 모양새가 되긴 했지만, 일본 정부의 주장은 일방적이자, 사실무근이다.
첫째, 대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이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에 따른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다룬 것일 뿐으로 일본 식민 지배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은 포함되지 않았고, 따라서 식민 지배의 합법성을 근거로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에 따른 강제동원이 유효하다는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즉, 강제동원피해자 배상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빠져있던 사안이기에 대법원판결이 국제법 위반은 아닌 것이다.
둘째, 대법원의 강제동원피해자 판결이 청구권협정과 무관하다고 명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분쟁 해결을 요구한 것은 대법원의 판결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문재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일본의 간계에 넘어가지 않은 것일 뿐, 한국 정부의 무대응이 국제법 위반일 수 없다.
오히려 국제법을 위반한 것은 일본 측이다. 피해자들은 일제의 군대와 경찰의 통제 아래 노예와 같은 강제수용과 강제노동을 강요당했다. 일본 정부와 긴밀한 범죄공동체를 이룬 일본기업의 강제동원은 모두 반인도 범죄 또는 노예금지와 관련한 국제적 강행규범을 위반한 것이다. 국제인권법은 국제적 강행규범 위반에 따른 개인 청구권에 대해 국가가 함부로 포기하거나 상대국과 협상할 수 없으며, 소급적용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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