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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치원 - 寧靜致遠

마음이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
마음이 안정되지 않으면 뜻을 이룰 수 없다.
非澹泊 無以明志 非寧靜 無以致遠
- 『제갈무후전서(諸葛武侯全書)』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으로 더 잘 알려진 이 고사는 제갈량이 54세가 되던 해 전쟁터에 나가면서 8살 된 아들 제갈첨에게 보낸 편지 ‘계자서(誡子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훗날 제갈첨은 아버지의 이런 뜻을 잘 이어받아 촉나라와 마지막을 함께 하며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한다.
‘담박(澹泊)’은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한 상태를 뜻하고, ‘영정(寧靜)’은 편안하고 고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맑고 깨끗하고 안정된 마음이 있어야 만이 미래를 내다보고 큰일을 이루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의 봄’과 ‘노량’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관람 내내 역사에 대한 기시감과 환영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다. 황정민과 정우성의 연기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던데, 나는 영화에 문외한인지라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역사적 사건에 기초한 나의 감정을 제어하기가 힘들어 분노 에너지가 극에 달했다.
12.12 후 장태완 사령관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보다 더 미운 사람은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부 장관이다.”라는 말을 했다. 국군 통수권자나 각 군의 참모총장을 지휘 감독하는 국방부 장관이 ‘반란을 주도한 자를 체포하라’라는 명령만 내렸어도 역사는 분명히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또한, 선조는 무능하고 비겁한 원균을 비호하기 일쑤였다. 선조가 원균을 등용한 결과 조선 수군은 일시에 궤멸 되고 말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책임질 리더로서 매우 부적격하였던 ‘최규하’나 ‘선조’를 보면서 작금의 ‘검사의 난’에서 겪었던 무능과 무책임의 지도자 ‘문재인’이 떠올랐다. 코로나 사태 시, 생계가 막연하였던 자영업자에게 손실보상금을 지원하지 않았던 점과 공권력을 동원해 법관을 사찰한 ‘혐의자’에게 한사코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며 그를 비호하고 오히려 하급자인 총장에게 아부까지 하던 일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지지율과 인기에만 목을 매던 그는 어쩌면 연예인 병에 걸린 대한민국 최초의 정치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반란군 전두환보다 ‘최규하’가 더 밉고,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궤멸 당하게 한 원균보다 ‘선조’의 무능이 더욱 밉고, 윤석열의 검찰 쿠테타를 방조한 ‘문재인’이 더욱 혐오스러웠다.
인류의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이 존재해 왔던 것처럼,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반역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쿠데타와 전쟁은 천재지변이 아닌 인재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의지이다. 침략자나 반역자를 소탕하겠다는 지도자의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막아내고 지켜낼 수 있는 일이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서 민초들은 명량해전과 같은 비현실적 상황에서도 드라마틱한 역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국가적 존망의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해낸 것은 대통령이나 군주와 같은 지도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위치에서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웠던 ‘장태완’이나 ‘이순신’, ‘추미애’와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는 국란의 위기에서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반역자와 왜적 때문에 민족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능한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파국을 맞이하는 비극이 벌어질 뿐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같은 일을 끊임없이 되풀이 당하고 말 것이다. 이런 비극이 나의 당대에도 두세 번이나 벌어졌는데, 더 이상 반복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겠는가?
‘통찰력’은 나라의 지도자이든, 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이든 또는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각 개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춘추좌씨전』에는 “명철한 사람은 화근의 원인을 일찍 깨달아 멀리 있을 때 제거한다[君人者, 將禍是務去, 而速之, 無乃不可乎.]”라고 하였으며, 『육도(六韜)』에는 “아는 것이 남과 다름이 없다면 나라의 스승이 될 수 없다[智與衆同, 非國師也.]”라고 하였다.
문재인~, 과연 그는 역사를 내다보는 ‘통찰력’은 고사하고 사람을 보는 안목이나 있었던 사람이었을까? 그저, 시비곡직을 불문하자. 그렇다면 과연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성찰이나 반성이라도 하는 사람일까? 이 시국에 팔자 좋게 책방 놀이나 하며, 표정 관리에 열중하고 있을 때인가?
‘담박명지 영정치원(澹泊明志 寧靜致遠)’은 조선과 민국의 애국지사들이 참으로 좋아했던 문구이다. 특별히 안중근 의사가 중국의 여순 감옥에 갇혀있을 때 쓴 글씨로도 유명하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만약 문재인 씨가 평소 안중근의 정신을 십 분의 일, 백 분의 일만이라도 닮기를 원하였다면 오늘과 같은 비극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내가 ‘최규하’나 ‘선조’보다 ‘문재인’ 씨를 더욱 미워하는 것은, 최규하나 선조는 국가가 누란의 시대여서 불가피한 측면도 일견 있었지만, 그가 통치하던 시대는 시스템만으로도 얼마든지 반란을 막을 수 있는 평화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기만하고 몰래 정권을 갖다 바친 비열한 인성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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