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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암동 시사회

최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5월에 개봉될 영화 송암동시사회에 초대되어 영화를 관람하고 품평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조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이 영화는 80524일 광주 외곽 송암동 일대에서 벌어진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5공 청문회를 통해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바로는 805월 광주에 파견됐던 11공수 여단이 시 외곽으로 퇴각하는 과정에서 전투교육사령부 교도대 병력과의 오인 사격으로 공수부대원 9명이 사망하고 원제 저수지에서 놀던 어린이 6명이 사망하였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뻔뻔한 거짓말이었고 철저한 위증이었다.
이 영화는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하되 도청 앞 발포 사건이 아닌 광주 변두리인 송암동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충격적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 형식으로 제작이 된 까닭은 송암동 사건에 대한 사진이나 비디오 등의 자료가 부족하여 다큐멘터리 제작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영화 시나리오의 90% 이상을 피해자와 계엄군의 인터뷰 그리고 그에 따른 증언에 기반하여 제작한 논픽션 영화이다.
이조훈 감독이 취재 과정에서 밝혀낸 진실은 광주 청문회의 진술 내용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민간인 학살이었다. 광주 봉쇄를 위해 도심 외곽으로 향하던 ‘11공수 여단이 광주 재진입 작전을 위해 광주 비행장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받고 송암동을 지날 때 그 병력은 청문회에서 보았던 군용트럭 2~3대가 아니었다.
무려 군용트럭 54대와 장갑차 2대에 1,200여 명이 넘는 병력이 출동하였으며, 공수부대원 전원에게 지급된 개인화기가 (M16) 560, 수류탄 2개씩이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들이 쏘아댄 탄피가 도로를 가득 덮어서 당시 이 도로를 황금 도로라고 할 만큼 탄피가 도로에 가득 찼다고 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계엄군 간의 오인 교전도 착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도된 사건이었다는 제보가 있었음을 증언하였다.
그 동안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던 내용과 역사의 진실 사이에는 엄청난 괴리가 있었다. 계엄군 간의 교전으로 다수의 군인이 사망하자, 광분한 공수부대원은 이에 대한 분풀이로 초등학생부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송암동 양민들을 무차별 학살하였다. 심지어 집집마다 가택수색을 하여 총살하기도 하였으며, 젊은이 20여 명을 논두렁으로 끌고 가 포승줄로 묶은 채로 일렬로 세워두고 뒤에서 한 명씩 총살하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당시 총을 쏘았던 장교는 현재 서울에서 멀쩡히 잘살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화 속의 실제 인물 전재수군은 당시 11살의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었다. 저수지에서 친구들과 놀다 군인들의 갑작스러운 총격에 놀라 달아나다가 형이 사준 고무신이 벗겨지자 고무신을 가지러 돌아가던 중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수개월 전 전두환의 손자 전우용이 광주 망월동 5.18묘역에서 옷을 벗어 닦던 비석이 바로 그 전재수 군의 비석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때 만약 내가 광주에 있었더라면 이라는 가정을 한 채 상상을 해보았다. 성질 급한 나는 틀림없이 길길이 날뛰다 제일 먼저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이내 자신의 상상을 부인하였다. 격동하는 현대사에서 오늘까지 내가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용기와 정의감이 나를 지켜준 것이 아니라 비겁함과 보신주의의 처세술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란 양심의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광주에 파병된 계엄군 2만여 명, 송암동에 투입되었던 공수부대원 1,200명 중에 정말로 군인이 국민을 향하여 총을 쏘는 것은, 절대 옳지 않다는 신념으로 총을 쏘기를 거부했던 계엄군은 진정 단 한 사람도 없었더란 말인가? 세월이 흘러 뒤늦게라도 마음의 가책을 느껴 양심선언을 하고자 하는 계엄군이 이토록 없을 수 있단 말인가?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정권도 바뀌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진보적 대통령을 겪었으면서도 어째 우린 역사적 진실을 알려는 노력에 이처럼 둔감할 수 있었던 말인가?
시사회장을 나오면서 끊임없이 내게 질문이 솟구쳤다. 어떻게 문명국가에서 이런 야만의 세월이 있을 수 있었단 말인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정말 자랑스러워하는가? 민족은 절대 선인가?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가 왜적에게 침략을 당한 것은 무려 78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가 일본 본토를 침략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것이 정상적인 나라인 것일까? 우린 정말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어서일까? 우리 민족은 세계를 제패해 본 일이 있었는가? 우리가 다른 민족을 점령해서 속국 삼아 본 경험은 있는가? 서글픔과 분노로 자신을 달랠 길이 없었다. 세계 어느 민족인들 의 역사가 없었겠는가마는 우리의 역사는 어째서 의 역사보다는 의 역사로만 점철되었단 말인가? 지정학적 편방 민족의 한계가 이런 것인가? 역사를 깊이 있게 공부하면 할수록 민족주의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나만이 이런 것일까? 오늘 밤은 막걸리 없이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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