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절도, 그리고 ‘좋은 삶’에 대한 상상력(1)
2023년도 임금체불액이 약 1.7조 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고 한다. 체불액 1.7조 원이란, 얼마나 큰 규모인가? 대략 2백만 원 월급을 받는 노동자 약 7만명이 1년 동안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얘기다! 이는 300명 노동자가 일하는 대기업 230개 이상이 1년 동안 임금을 하나도 주지 않은 꼴! 임금이란 무엇인가?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노동력 상품을 파는 대신 그 상품의 대가로 받는 화폐액이 곧 임금이다. 칼 마르크스는 1867년 <자본>에서 이 ‘노동력 상품화’, 즉 노동력과 임금이 동일한 가치크기로 교환되는 ‘등가교환’이 어떻게 해서 사업주에게 이윤을 가져다주는지 그 비밀을 밝힌 바 있다. 그 비밀은, 널리 알려진 바, 노동력의 가치(임금)와 노동력을 사용해 새로 생산한 가치(부가가치)의 차이, 즉 잉여가치(surplus value)에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고용, 노동력을 사용함으로써 이윤을 얻는 것, 즉 이 잉여가치의 획득을 ‘착취’라 불렀다. 이렇게 노동력 상품에 대한 가격인 임금을 ‘제대로’ 주어도 착취는 발생하는데, 2023년의 대한민국처럼 사용자가 노동력을 실컷 사용해 돈을 벌고도 그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 자체를 무려 1조7천억원이나 주지 않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것은 도덕적으로, 착취보다 더 나쁜, ‘도둑질’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노동법은 한국보다 더 정직하다. 그러면 임금 체불 내지 임금 절도 시 법적 처벌은 두 나라가 어떻게 다른가? 한국의 경우, 임금 체불이 있어도 근로감독관이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설사 해당 노동자가 노동위원회 고소나 행정소송 등을 통해 법적 승소를 하더라도 사업주는 벌금형으로 끝나기 일쑤다. 그것도 체불액의 30% 정도만 벌금으로 내면 끝이다. 떼먹은 돈의 1/3만 벌금으로 내라니, 법적 구조 자체가 ‘돈 떼먹기 딱 좋은’ 조건이다. 그런데 임금 채권의 시효가 3년이기에 이런 법적 쟁송조차 소송이 3년 이상 늘어지거나 노동청이 늑장 대응으로 직무 태만 한다면 (3년 지나) 이겨도 아무 소용없다. 이런 판국이니 사업주들은 ‘질긴 놈이 최고’라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질긴 놈’으로 인해 2023년 9월 26일 오전 8시30분경 서울 양천구 해성운수 앞에서 227일 간 1인시위를 하던 택시 노동자 방영환(당시 55세) 씨가 분신했다. 사고 후 경찰과 구급대가 출동해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던 방 씨는 분신 10일 만인 10월 6일 새벽에 숨지고 말았다. 방 씨는 2022년 11월 대법원의 부당해고 판결을 받고 원직 복직했지만 사실상 사납금제로 회귀하는 근로계약서를 거부하다 임금 한 푼 받지 못한 채 수개월을 버텨야 했다. 사업주 정 아무개 대표는 방 씨를 폭행하기도 했다. 누군가 배가 고파 슈퍼마켓에서 우유 하나 훔쳐도 경찰에 잡혀가는데, 무려 7만 건(총 1.7조 원 규모)의 노동력 ‘도둑질’에 대해선 큰 단죄가 없는, 아니 사실상 ‘묵인’하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그러나 ‘임금 절도’를 엄금하는 미국은 꽤 다르다. 일례로, 미국 뉴욕주는 2011년에 ‘임금절도예방법’(Wage Theft Prevention Act)을 만들었다. 아예 법률 이름에 ‘임금 절도’ 개념을 쓴 것! 여기서 임금 절도란 단순히 임금을 떼먹는 경우만이 아니라 최저임금 위반, 연장근로수당 등의 미지급까지 포괄한다. 자본주의 미국답게 ‘합법적인 착취’(임금 지급을 전제로 한 착취)는 정당하게 인정하되, 임금 절도는 엄금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업주는 기본적으로 노동자에게 임금명세를 통지하도록 의무화한다. 통지서에는 사용자 소재지 파악을 위한 사용자의 공식·비공식 명칭과 주소·전화번호를 기재해야 한다. 임금 절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임금통지서를 주지 않으면 2500달러의 손해배상금을 내야 한다. 그래도 임금 절도를 하면, 미지급 임금은 물론, 계약 위반금까지 모두 200%를 내야 한다. 게다가 사업주는 최대 20년 징역형을 살 수도 있다. 소송 자체도 노동자 개인만이 아니라 다수의 노동자 내지 노조 등 집단소송이 가능하며, 심지어 연방노동부가 사업주를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한다. 게다가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에게 사업주가 보복을 하면 2배 배상을 넘어 1만 달러 이하의 벌금 또는 6개월 이하의 금고형까지 받게 한다. 한 마디로, 미국의 사업주는 임금 절도 시 ‘쫄딱 망하게’ 돼 있다.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나 수많은 검사들이 미국에 가서 법제도를 공부하고 온다며 엄청난 돈을 쓰고 왔는데, 과연 이런 내용들이나 제대로 배우고 왔는지, 그래서 과연 무엇을 어떻게 적용하고 있는지 지극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과연 임금 체불 내지 임금 절도가 잘 예방되어, 모든 노동자가 그 노동력의 가격인 임금을 충실히 받고 매일 충실하게 출퇴근하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별로 없다. 실은, 그 외에도 임금 불평등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나아가 ‘착취’당하고 싶어도 ‘착취’당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젊은 청년들(아니면 노인들, 여성들) 문제 역시 산적해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