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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지은(一飯之恩)과 애자필보

()나라의 개국공신이었던 한신(韓信)’에게는 표모반신(漂母飯信)’ 또는 걸식표모(乞食漂母)’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끼니를 거르던 백수 시절에 빨래하는 아낙으로부터 밥을 얻어먹은 일이 있었는데, 훗날 초() 왕에 봉해지자 빨래하던 아낙을 찾아 밥 한 끼 얻어먹은 은혜를 천금으로 보답하였다.
전국시대 위()나라에 범수(范睢)’라는 사람이 있었다. 도피자였던 범수(范睢)는 사선을 넘나드는 간난신고의 세월 끝에 진()나라 소왕(昭王)에게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계책이 채택되어 마침내 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권력을 잡은 후 그는 자신이 유리걸식하던 시절에 눈 한번 흘기며 질시했던 사람에게도 반드시 찾아가 보복하였다. 사기(史記)에 이른바 밥 한 그릇의 은혜에도 반드시 보답하였고, 눈 한 번 흘긴 원한도 반드시 갚았다.”[一飯之恩必償, 睚眦之怨必報.]라는 고사는 범수를 두고 한 말이다.
범용한 인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이야기이다. 정상의 자리에서 절대 권력을 갖게 된다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마음을 품어보지 않겠는가? 은혜를 갚고 원수를 징벌하는 권선징악의 주체가 된다는 일은 상상만 해도 얼마나 통쾌한 일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결코 미담이 아니다. 선과 악에 따른 판단의 주체가 내가 되어서도 곤란하지만, 그 기준이 자신의 감정의 호오(好惡)에 따른 것이라면, 이는 더더욱 불가한 일이다. 성공한 사람이 어려운 시절에 사적인 은혜를 갚는 일을 어찌 탓할 것이 있겠는가마는 그것은 사적인 일에 그쳐야 한다. 한 나라의 공적인 자리에서 국가적 권위로 행해지는 상벌과 거취의 인사 문제라면 그것은 반드시 시스템에 의한 절차적 검증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적인 인연으로 나를 도왔던 사람이 포상과 등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이롭고 의로운 일을 행한 자가 포상과 등용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사적인 감정으로 나와 원수 되었던 자가 징벌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히고 악행을 행한 자가 마땅히 징벌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좋은 게 좋은 것이다.’라고 하는 말은 매우 이기적이고 음모론적이며, 왜곡되고 편향된 논리이다. 단순히 내 취향과 기호에 맞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비록 내게 다소 불편하고 성가신 것일지라도 옳은 것이라야 좋은 것이다. 상벌과 인사의 대상이 권력자의 감정의 호오와 친소에 따라 결정된다면 바이든날리면이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은 아첨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한때 대선 가도에 정적이었던 사람을 집권 후 2년 동안 370여 차례의 압수수색 끝에 만신창이가 되도록 검찰을 동원하여 보복하였으며, 자신에게 눈 한 번이라도 흘겼던 자는 반드시 검찰 캐비닛을 열어 보복하였다. ‘일반지은의 은혜는 이미 아득히 잊어버렸지만, ‘애자필보의 복수만큼은 여야를 불문하였다. 자당의 허수아비 대표는 기침 소리만 크게 내어도 생사가 바뀌어 2년간 7차례나 바지사장이 바뀌는 촌극이 벌어졌으며, 국내 굴지의 기업체 총수는 일 년 12달을 해외 순방이나 국내 먹방에 따라다니는 동네 꼬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명색이 입법 기관인 국회가 합의하여 채택한 발의안에도 2년간 무려 5번이나 거부 안을 내밀었다.
정권은 유한하고 권력은 오래도록 흥하지 않는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는 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권력의 칼춤을 추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한신과 범수의 말년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새를 다 잡고 나면 좋은 활은 창고에 감추게 되고, 교활한 토끼가 죽고 나면 사냥개는 삶아 먹게 되는(蜚鳥盡良弓藏 狡兔死走狗烹)” 것이 역사의 교훈이 아니었던가?
진시황은 불로초가 있는 곳을 알아낼 수 있다는 천록비결(天祿秘訣)이라는 책을 받아 들고 수많은 학자를 동원하여 해독하게 하였다. 그러나 진나라를 망하게 할 것은 호()이다. - [망진자호야(亡秦者胡也)]’라는 한마디 말만을 해석하였을 뿐 다른 어떤 것도 해독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호야(胡也)’를 북방 오랑캐로 잘못 해석하여 서둘러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였지만, 정작 진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북방의 오랑캐가 아니라 자신의 둘째 아들 호해(胡亥)’였다.
윤씨 정권을 망하게 할 것이 쥴리인지 동훈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윤씨의 허세와 권력 놀음이 그 단초를 제공하게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절대 권력을 쥔 자가 복수의 화신이 되어 자신의 감정대로 권력의 칼을 휘두른다면 결국, 그는 그 칼에 자신이 베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든 공동체의 리더를 자임하는 자는 자신의 권력의지에 대한 도덕성과 역사를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자신의 천명을 보존하는 첩경일 것이다. 나는 윤 씨에게서 망진자호야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스며들고 있음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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