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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설 즈음, 우울한 거리 순례기

설을 앞두고 거리를 다녀 보았다. 날씨도 많이 풀렸고 번화가로 알려진 장소인데도 오가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며칠 동안 서울의 대표적 상권들을 둘러보았지만 거리는 썰렁하기만 하고 어느 한 곳 북적이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거리에는 빈 상가가 즐비하고, 그런 상가 중간 중간에 공사가 한창이다. 짐작컨대 오랫동안 비워있던 상가 자리에 아예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상가 중의 식당 한 곳을 찾아보았다. 인터넷 맛집이라는 뒷골목 작은 식당을 찾아 들어갔더니 점심시간인데도 손님은 한 사람밖에 없다. 멋쩍게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오면서 비싼 가격 때문이 아닌가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만원 이하에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은 찾기 어렵게 되었다. 작년에는 서울 시내 어떤 식당에 5천 원짜리 라면 메뉴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시켰더니, 준비가 안 된다는 주인의 싸늘한 답변이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예전 가격을 기억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뛰어오른 밥값이 생소하고 선뜻 시켜 먹기가 내키지 않는다. 그런 탓인지 나도 외식 횟수가 점차 줄어드는 것을 느끼고 있다.
식당에서 나와 편의점을 지나는데 창문 안에 라면과 김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차가운 김밥과 라면 한 그릇이 이제는 서민들의 단골 식단이 된 듯하다. 작년에 방송에서 본, 서울에 사는 지방 청년들 이야기가 새삼 기억난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고 있지만 집세 내기가 버거운 한 여성이 6천 원짜리 우동집 앞을 서성이다 기어코 지나쳤다. 그런 자신에게 보상을 해 주기 위해 편의점에 들러 평소 먹는 김밥보다 5백 원이 더 비싼 고급 김밥을 사먹었다며 해맑게 웃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서민들은 빚에 시달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올라탔던 주택가격 거품이 꺼지면서 빚만 남았고, 나날이 올라가는 금리로 지갑은 비어만 간다. 소비를 줄이지 않을 수 없는데 서민 체감 물가는 천정부지로 뛰었다. 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데 시장이 붐빌 리가 없다. 대한민국 대표 시장의 하나인 동대문 시장을 둘러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 중국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고는 하지만, 이젠 내국인들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썰렁했고, 과거 명성을 날렸던 대표 상가들의 1층도 군데군데 비어있다. 시장이 썰렁하면 고객들은 다시 찾기를 망설이기 마련이다. 대표 상권인 동대문이 무너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시장 한 가운데 자리한, 디자인이 좋다는 건축물은 썰렁한 시장의 상징처럼 보인다. 사람을 끌지 못하는 건축물이 시장 한 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줄어드니 주변 거리가 더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그래서 시장에는 유동 인구가 중요하다.
한때 잘 나가던 강남의 대표 상권이었던 가로수길로 발길을 돌렸다. 몇 년 전에는 너도나도 패션을 뽐내며 사진찍기에 바쁘던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다. 놀랍게도 관광객은커녕 아예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빈 상가들이 이어지고 임대라는 광고 표지판만 흉물스럽게 널려있다. 한때는 특색있는 맛집과 소품 판매점, 패션 거리로 이름을 날리면서 세계적인 의류 매장들이 앞다퉈 입주하고, 그러다보니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맛집과 상점들이 문을 열어 사람들이 몰리던 거리였다. 알게 모르게 비싼 임대료 때문에 특색있는 맛집과 소품점들이 하나씩 둘씩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유동인구가 줄어들더니, 이익이 나지 않으면 과감히 문을 닫는 다국적 기업으로 인해 거리가 갑자기 썰렁해지면서 갈 길을 잃고 말았다. 그런데도 임대로는 떨어질 줄 모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쓸고 간 거리의 모습은 처참했다. 저 거리에 다시 사람들이 붐비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란 생각이 들었다.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경기가 싸늘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작년 8월이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코로나로 장사가 되지 않아 빚을 얻어 간신히 버텼고, 이제 여름도 끝나 본격적으로 다시 손님 맞을 준비를 했는데 예상과 달리 찾는 손님의 수가 늘지 않았다고 했다. 그동안 버티게 해 준 기대와 희망이 무너지면서 절망적이 되었고, 그 사이 빚은 더 늘어만 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서민들의 사정은 외면하고 있다. 과거 이런 정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매정하기만 하다. 작년도 부자와 대기업 감세로 인해 국세수입은 564천억 원이 덜 걷혔고, 이를 상쇄하고자 정부는 예산을 철저히 통제해 결정된 예산을 쓰지 않은 돈이 457천억원에 달한다. 가계가 사정이 좋지 않을 때 정부가 지출을 늘려야 하는데, 지금은 거꾸로 가고 있다. 정부 지출이 줄어든 것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려서 성장률은 1.4%에 그쳤다. 그러니 서민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정치인들은 시장에서 떡볶이를 나눠먹으며 희희덕거리고 돌아간다. 시장에 와서 상생을 외치고 시장을 돕겠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 그들이 시장의 영세상인들을 돕는 예산을 삭감한 사람들이다. 아는지 모르는지 상인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맞는다. 설날에 돌아본 서민 경제의 슬픈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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