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계급 폐쇄 전략' 혁파할 수 있나(1)
윤석열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증원하겠다고 한다. 이 정부는 그동안 사회경제적인 차원에서 주로 기득권 세력의 편을 드는 정책들, 예를 들면 감세정책, 간호사법과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등으로 일관했으나 이번에는 의사들의 이해보다는 국민 다수에게 매우 절실한 정책을 시행하려 한다. 좋게 생각하면 윤석열 정부는 이것이 국가적으로 도저히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지만, 나쁘게 생각하면 선거용으로 꺼낸 카드의 의혹도 짙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필수의료 패키지’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 그리고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총파업 카드를 꺼내 들면서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여러 의사단체들도 지금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특정 지역, 특정 과에 쏠림현상이 문제라고 반발한다. 의사들은 갑자기 의대 입학생이 늘어나면 의학교육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고, 대입에서 의대 쏠림이 심화되어 이공계 붕괴 등이 예상되고, 건강보험 재정 및 의료비 상승 등 국민 피해가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의대 증원과 지역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해 온 시민단체는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 그리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지난해 12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3.9%가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했다"며 "의협의 거부는 명분도 설득력도 없는 억지"라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는 의사들이 집단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면 면허취소까지 강행하겠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칼을 들었다가 실패한 정책을 윤석열 정부가 완수할 수 있을까? 사실 이 문제는 이해집단의 반발에 공권력을 단호하게 집행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정책 헤게모니 능력과 대국민 설득력에 달려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 수의 부족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닐 수 있고, 의사 수의 증대가 의료 격차를 해소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정부안의 성공 여부는 정부가 현재와 미래의 필수의료·지역의료 공백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그리고 증대되는 의료비 부담과 의료 전달체계 문제의 종합적 재조정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문재인 정부의 공공의대 설립안과 의대정원 증원안이 의사들의 저항으로 좌초한 것도 공권력을 단호하게 집행하지 못한 데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정부나 민주당의 종합적이고 거시 정책적 비전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시장에서 독점적 이익을 누리려는 전문직이 자격증 소지자의 수를 최대한 줄이려는 전략은 거의 상수에 가깝다. 흔히 ‘계급 폐쇄(class closure) 전략’으로 불리는 이 의사들의 행동은 전문직 자격자 수가 늘어나거나, 다른 직종의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 영역에 들어오면 자신이 차지할 파이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격증 소지자 수를 줄이거나, 자신의 권한 영역을 독점적으로 유지하려는 전략이다. 의협이 의대 증원을 일관되게 반대하고, 간호사의 업무를 확대하는 간호법에 대해 반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0년대에 사법시험 합격자수를 300명에서 500명으로 증대하려 했을 때 인권 변호사들까지 시민단체에서 탈퇴하거나 2000년 의약분업 의제로 인의협 의사들이 여러 사회단체에서 대거 탈퇴한 일도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국가적으로 필요하고, 다수의 국민들에게 분명히 큰 혜택이 돌아가는 개혁 조치를 전면 반대한다고 말하면 설득력이 약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개혁은 그 부작용이 더 커질 것이라고 반박하거나, 전문직의 규모가 커지면 서민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것이라고 은근히 위협한다. 이번 정원 증원안에 대해서도 의사들은 같은 논리를 동원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 격차와 수도권 유인의 강력한 요인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의대 증원을 하면 지방 의대에 진학한 사람들은 대다수 수도권으로 갈 것이며, 필수의료 분야보다는 돈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쪽으로 몰려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렇다면 증원 자체를 하지 말자는 것인가? 아니면 장기적으로 논의하자고 하면서 사실상 모든 시도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것인가? 의협의 의대정원 증원 반대 논리에는 의사 기득권 지키기 전략과 합리적 비판의 내용이 같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이후 의사들의 일관된 증원 반대 논리에는 왜 전국 자연계 최우수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몰려가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답은 없다. 그리고 학교에서 최우수 성적을 자랑하는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진학하는 문제와 코로나 19와 같은 팬데믹이 왔을 때 국가가 이를 어떻게 대처 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도 없다. 즉 의료행위가 이렇게 영리행위로만 일관하고, 공공병원이 전체 병원의 10% 정도에 미치지 못하고 건강보험 보장률이 아직 65%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돈 없는 서민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의료인으로서 윤리적 고민도 찾아보기 어렵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