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계급 폐쇄 전략' 혁파할 수 있나(2)
개혁의 부작용, 의도하지 않는 결과, 더 큰 혼란과 비용지출의 가능성을 강조하면서 증원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 저항에 맞서서 정부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에 투입되어야 하는 의사 수를 확보하기 위한 분명한 제도개혁과 효과적인 재정 마련 계획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실상 증원을 무산시키려는 의사 집단 내 여론을 소수화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거의 모든 사회경제개혁은 O, X로 답할 수 없다. 모든 정책은 상호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대한 종합적 대책을 동시에 추진하지 않으면 대체로 실패한다. 즉 필수의료 종사자 우대, 의료 영리화 축소 정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고 지방의 공공병원 육성 정책도 포함해야 한다. 우리는 의협의 반발에 수긍할 수 없지만, 윤석열 정부의 보건복지부나 집권당인 국민의힘의 의지나 정책시행 방법도 신뢰하기 어렵다. 실제 윤석열 정부는 국민 건강권 확대에 도움이 되는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했으며, 공공병원 증설 의지가 없고. 의료 시장화와 영리병원 도입을 ‘개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 문제는 이 구조적이고 복합적 위기를 해결하는 하나의 처방일 뿐이다. 그것과 연관된 구조, 제도, 의식 개혁의 고차방정식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의사들과 타협하여 의료수가 대폭 인상을 약속해서 그 부담을 모든 국민들에게 전가할 위험도 있고, 대형병원과 타협해서 의료 영리화를 서두를 수도 있다. 그 경우 국민들에게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기한 정책, 지역·필수·공공의료 의사 확보를 위해 공공의대 신설과 지역의사제 도입, 의료 시장화를 막는 정책도 필요한데 윤석열 정부가 그런 정책을 펼 것 같지 않다. 사실 국제기준으로 보면 한국 의료제도는 비교적 양호하다. 국민 보편적 건강보험이 도입되어 있고, 최고 수준의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 가능성도 비교적 높다. 그러나 공공의료의 수준은 매우 낮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가정 경제는 거의 파괴된다. 지금 의협이 아무리 진료 거부를 하겠다고 하고, 전공의들이 면허증까지 반납한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모든 이과 최우수 학생들이 의대로 몰려가는 이유는 한국에서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 수준이 매우 높고, 이 불안한 노동시장 조건에서 그래도 의사들이 높은 보수와 안정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의 부족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과계 최우수학생 의대 쏠림이 사실 더 심각한 현상이고, 국가의 미래를 매우 어둡게 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R&D 예산 대거 축소 정책에서 보듯이 과학 기술을 선도해서 국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육성책은 하나도 내놓은 것이 없다. 의대 진학을 촉진하는 요인을 오히려 더 추가했다. 의대 진학은 누가 뭐래도 사적인 동기에서 움직이고, 교육 이후의 수입이나 성과도 사적으로 전유되지만, 순수 과학이나 첨단 과학 분야 전공은 그 자체가 공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고려를 찾아보기 어렵다. 냉정하게 말해서 의사 수가 늘어나 모든 사람이 좋은 의료 서비스를 받게 되는 것보다는 아픈 사람 자체가 줄어들어 병원 갈 일이 없어지고, 의사가 필요 없어지는 세상이 더 좋다. 판검사나 변호사 수가 늘어나 서민들이 법률 서비스를 잘 받는 세상보다는 아예 소송 자체가 줄어들어 판검사나 변호사가 필요 없는 세상이 더욱 좋다. 물론 이것은 이상일 따름이고, 우선은 의료행위가 병원과 의사들의 돈벌이가 되지 않도록 하고, 판검사 지위가 권력과 돈을 얻는 중간 다리가 되는 이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병원과 법원, 의사와 판검사는 위급한 사람의 고통을 해결하고, 부정의를 바로잡아 원한과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극히 중요한 기관이자 요원이지만, 이들의 활동은 치료나 분쟁 해결 등 원상회복이 목표이지 미래의 먹거리와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기후 위기와 이후 팬데믹 가능성, 저출생과 노령화,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N수생이 독차지하는 의대 입학생, 이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제를 한꺼번에 고민해야 국가가 정말로 필요한 의사의 규모와 그들의 질을 추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대 증원 문제는 단순한 의료정책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정치적 의제이며, 국가의 미래 인재 양성과 인력 재배치, 공공복지, 국가 재정, 그리고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연관된 복합적 의제다. 이익집단의 저항에 국가가 굴복하지 않으려면 정당의 정치력과 정책 능력, 그리고 시민사회의 판단력과 참여 모두가 필요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