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벌써 법률안 아홉 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관리법, 방송법, 김건희특별법, 대장동50억클럽특별법, 이태원참사특별법 등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일어난 사건이나 상황과 직접 얽힌 법률안이다. 대통령이 내놓은 거부권 행사 이유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오늘 주제가 아니어서 그냥 넘긴다. 하지만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은 달리 볼 측면이 있다. 간호사 단체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간호사의 지위와 역할을 법률로 명확하게 규정하라고 요구했다. 손해배상 청구소송 제도를 악용해 파업권을 봉쇄하고 파업 노동자에게 보복하는 기업의 위헌 행위를 막아달라고 노동계가 국회와 정부에 요청한 것 역시 오래되었다. 국힘당은 민주당이 여당 시절에는 하지 않다가 야당이 되자 정부를 골탕 먹일 목적으로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했다고 비난했다. 국힘당은 언제나 두 법률안에 반대했다. 부자와 사회적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민주당은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표방한다. 여당 시절 180석의 힘으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랬으면 대통령 거부권 따위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180석 여당으로서 한 일이 없다는 비판은 지나치다. 민주당은 다수 여당으로서 많은 일을 했다. 그러나 의사협회와 기업의 눈치를 보면서 간호법과 노란봉투법 처리를 미룬 건 사실이다. 그래서 정략적 입법이라는 국힘당의 비난을 받은 것이다. 내가 국힘당의 주장에 공감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이것만큼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 마시라.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이 나쁜 법률이라는 말이 아니다. 둘 모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법인데 민주당이 여당 시절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통과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민주당과 국힘당은 한국 정치의 축이다. 6월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회복한 1987년 이후 37년 동안 집권당은 오직 둘뿐이었다. 둘 모두 이름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당의 지역적 계급적 기반과 이념 지향이 달라진 적은 없다. 국힘당은 한국형 보수정당, 민주당은 한국형 진보정당이다. 정주영의 국민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3당 체제를 세웠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20여 년 전 잠깐 위력을 떨쳤던 민주노동당도 사라졌다. 양당체제가 가까운 미래에 무너질 조짐은 없다.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두 정당 소속 대통령만 보게 될 듯하다. 역사가 우리 세대한테 내린 정치적 운명으로 여긴다. 국힘당과 민주당은 1987년의 민주정의당과 평화민주당을 계승한다. 국힘당에 대한 나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한 문장으로 줄일 수 있다. ‘전두환이 만들었고 전두환을 부정하지 않는 정당’이다. 그 당에 속한 대통령이나 비대위원장이나 국회의원이 반박한다면 공개 논쟁을 할 의향이 있다.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소리쳐 보라. “우리는 민주정의당의 후예가 아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리 없으므로 내가 국힘당 계열 정당 후보에게 표를 준 적이 없다. 그 당에 우호적인 말을 한 일도 없다.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없앨 방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존재를 인정한다. 국민 절반이 지지하는 정당의 존재를 어찌 부정하겠는가. 정신이 멀쩡한 내가 앞으로도 국힘당을 지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전두환을 부정하지 않고 박정희를 숭배하며 이승만을 떠받드는 정당, 집권할 때마다 국민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고 대형 참사를 일으키는 정당, 내 청년기를 빼앗아간 독재자의 후예를 어찌 지지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 생각이 진리라고 주장할 뜻은 없다. 나는 국힘당과 민주당의 강고한 양당체제를 국민의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유권자들이 양당체제를 세운 것은 달리 믿을 만한 정당이 없기 때문이다. 국힘당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오늘 비평의 대상은 민주당이다. 민주당에 대해서도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겠다. 민주당 정치인이나 당원이 이의를 제기한다면 마찬가지로 공개 토론할 의향이 있다. 나는 어느 정당의 당원도 아니다. 8년쯤 전 슬며시 정의당을 떠난 게 정당 경력의 마지막이었다. 당원 되는 것이 의미 없다고 여겨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것은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서 당적을 버렸을 뿐이다. 다시 정당에 가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헤아려보니 1988년 이후 나는 16년 정도 여러 정당의 당원으로 살았다. 평화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을 민주당의 전신으로 보면 7년 정도는 민주당에 몸담았다고 할 수 있다. 당적이 없는 유권자인 오늘의 내게 민주당은 기성복 브랜드 비슷하다. 선거는 ‘기성복 고르기’다. 나는 이 말을 대통령이 되기 전의 정치인 노무현에게 들었다. 맞다. 정치시장에는 맞춤복이 없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모인 정당이 어떻게 모든 면에서 누군가의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유권자는 존재하는 정당 중에 제일 마음에 들고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정당, 제일 나아 보이는 후보를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민주당은 내가 제일 신뢰하는 브랜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