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민주당의 역사와 정치노선과 조직문화를 어느 정도 안다. 민주당은 군사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성취했으며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했다. 최저임금 인상과 복지예산 확대를 중심으로 서민과 중산층의 삶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둔 경제정책을 편다. 국민경제를 운영하는 능력도 훌륭하다. 재임 중 달러표시 1인당 국민소득 증가율을 기준으로 실적을 평가하면 민주당의 노무현·김대중·문재인 정부가 국힘당의 노태우·김영삼·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압도한다. 민주당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개인의 자유를 북돋움으로써 문화산업 발전의 정치적 기초를 제공했다. 인터넷과 이동통신 등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한 것도 민주당 정부였다. 나는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을 지지했다. 다른 정당의 당원이었던 때도, 표를 주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국힘당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기를 응원했다. 두 달도 남지 않은 22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민주당이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모든 정치인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러면 어떤가. 선호하는 브랜드라고 해서 출시한 모든 옷의 디자인과 품질이 내 마음에 들기를 바랄 수는 없지 않겠는가. 맞춤복이 아니라 기성복이니까,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여럿 있다. ‘결점’이라든가 ‘혁신과제’라고 하지는 않겠다.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리 볼 수도 있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건 문제가 없는 거야!” 그렇게 말할 민주당원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민주당이라는 브랜드를 신뢰하는 유권자로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을 세 가지만 말하겠다. 참고하든 말든, 그건 민주당원의 몫이다. 첫째는 대의원 제도다. 대의원 제도는 필요하다. 당의 일상적 의사결정을 당원 투표로 할 필요는 없다. 웬만한 것은 중앙당이나 시도당 대의원들이 당원을 대신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 선거 후보를 뽑거나 당대표와 최고위원 같은 당직자를 선출할 때 대의원에게 특별히 큰 권한을 주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나는 이것을 정치인이 당원을 지배했던 구시대 정치의 불합리한 유물로 간주한다. 대의원이 된다는 것은 당원으로서 명예로운 일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대급부로 특권을 요구하면 명예로운 행위가 될 수 없다. 송영길 전 대표와 여러 국회의원이 엮여든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왜 일어났는가? 지역위원장과 국회의원이 대의원을 사실상 지명하고, 대의원의 한 표에 일반당원 표의 수십 배 가중치를 부여하니까 그런 부패가 생기는 것 아닌가. 부패의 근원을 왜 싹 없애버리지 않는지,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둘째는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의 부당한 특권이다. 민주당 지역위원장은 대부분 국회의원이거나 국회의원에 출마할 사람이다. 그들이 대의원 선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원명부를 관리한다. 국회의원 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다른 경선 참가자는 당원의 이름도 모르는데 지역위원장은 당원에게 일일이 전화를 건다. 이것을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민주당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지역구에 가면 왕처럼 군림한다. 지역위원장은 탈당하면서 당원명부를 가져간다. 다른 정당 후보가 되어 민주당 당원한테 문자를 보낸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당원명부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 지역위원장이 아닌 누군가를 지역위원회 정보관리자로 지정해 당원의 개인정보를 국회의원이 사유화하지 못하게 해야 마땅하다. 셋째는 당원의 권한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어떤 국회의원은 당원의 의사와 당 지도부의 방침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당 지도부를 공공연히 비방하고 당원을 모욕해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말리는 사람한테는 적대적인 언론을 활용해 당내 민주주의를 탄압한다고 소리 지른다. 당원은 기껏해야 문자를 보내 항의하거나 당 게시판에 비판 글을 올릴 수 있다. 그러면 ‘문자폭탄’ ‘홍위병’ ‘개딸전체주의’ 운운하며 당원을 비난한다. 당원들은 다음 총선 후보 경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 때 민주당 당원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제도적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말하지는 않겠다.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면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왜 여당 시절 간호법과 노란봉투법을 처리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정당은 기강과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일사불란(一絲不亂)’을 정당의 미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원 여론과 당 지도부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소수파가 있어야 한다. 지도부의 판단이나 다수 당원의 뜻이 언제나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를 보고 크게 놀랐다. 민주당에 ‘비주류’ 또는 ‘반명’ 세력이 있다는 걸 확인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내가 놀란 것은 민주당 비주류가 당 대표의 정치적 생사 결정권을 검찰과 법원의 손아귀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존재를 과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