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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 공포증 먹고 사는 한국의 보수주의(2)

 불평등이 심각한 미국에서 일부 자본가가 정부를 향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라고 요구하거나 기본소득제를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다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합리적 보수는 계급적 이익이나 기득권 사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보수 이념까지도 버릴 수 있다.
비합리적 보수는 공포로 인해 보수 이념을 갖게 되었기에 그 공포가 사라지지 않는 한 보수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병리의 견지에서 말하자면, 비합리적 보수는 공포를 방어하거나 회피하고자 보수 이념을 받아들인 사람들이라 하겠다. 비합리적 보수가 보수에서 이탈하거나 이탈을 시도할 땐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공포가 되살아나며, 그때 그 공포는 견디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비합리적 보수와 대화하거나 설득하려고 하면 그들이 방어적인 태도를 넘어서서 감정적 혼란 상태에 빠져 격렬하게 화를 내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합리적 보수보다는 비합리적 보수가 훨씬 더 완고하며 정신병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정국의 서북청년단 같은 극우 파쇼 테러 집단을 제외한다면, 한국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비합리적 보수집단은 한국전쟁 시기의 월남자들이다. 이들은 이념적 이유로 인해 월남한 게 아니라 미군의 무차별적 폭격, 특히 북한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거라는 소문 때문에 월남했다. 이념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생존하기 위해 월남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그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박해했다. 색깔 공격이 난무하는 한국에서 월남자들은 언제든지 간첩으로 몰려 죽임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렸고 거기서 벗어나려고 보수 완장을 찼다. 그렇게 한국 최초의 보수집단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보수의 아성인 대구·경북(TK) 지역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진보 운동의 메카였다. 대구는 해방 직후 시기에 '동방의 모스크바' 혹은 '조선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다. 호남은 자신에게 투표하는데 고향인 대구·경북이 자신을 반대한다며 박정희가 이를 갈았을 만큼 진보적이었다, 대구·경북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반정부 성향이 강한 야권 지역이었다. 해방 이후부터 줄곧 항쟁의 선봉에 섰던 만큼 대구·경북 지역은 어느 지역보다 자주, 그리고 심하게 탄압받았다.
대구·경북의 정치 성향이 180도로 뒤바뀌게 된 분수령은 1970년대에 발생한 인민혁명당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간첩 사건을 조작한 박정희 정권은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다음날 전격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인혁당 관계자들은 대부분 대구·경북 출신들이었다. 그래서 대구·경북이 인혁당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와 충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해방 이후부터 줄기차게 진보 운동의 선봉에 서 있던 대구·경북 출신들은 이 사건을 분기점으로 패배주의와 허무주의, 죽음의 공포 등에 뒤덮여 집단으로 전향하기 시작한다. 대구·경북 출신인 전두환의 등장은 이런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의 탄생과 확대, 강화는 빨갱이 사냥을 명분 삼은 양민학살 사건들, 각종 조직 사건이나 간첩 사건 같은 색깔 공격과 비례관계에 있다. 한국의 극우 보수 세력은 국민에게 보수 이념을 강요했고 그것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면 빨갱이나 종북세력으로 몰아 죽이거나 사회적으로 매장했다. 색깔 공격에 기초한 마녀사냥이야말로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로 인해 보수 이념을 받아들이게 강요하는 주범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빨갱이 사냥이 기승을 부렸던 일그러진 역사를 통과해 오면서 비합리적 보수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런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는 왜 보수화되고 있는 것일까? 오늘날의 청년세대는 한국 역사상 가장 불안한 세대이다.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가장 무거운 짐은 '고립적 생존 불안'이다.(이 주제는 민들레에 연재했던 예전 원고들 참조 요망) 이런 청년들에게 빨갱이나 종북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곧 밥줄이 끊긴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괜히 진보 쪽을 기웃거리다가는 '좌빨'로 찍혀 굶어죽기 십상이라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오늘날의 상당수 청년은 진보 이념은 물론이고 정치 그 자체를 회피하면서 보수 이념을 받아들인다. 결론적으로 기성세대가 주로 국가폭력에 대한 공포(색깔 공격=죽음의 공포)로 인해 비합리적 보수가 되었다면 청년세대는 고립적 생존불안(색깔 공격=생존 공포)으로 인해 비합리적 보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합리적 보수는 사실과 진실, 진리 등을 통해서 설득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의 설득이나 토론을 통해 입장을 바꾸게 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비합리적 보수를 늪에서 빠져나오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도는 공포의 완화 혹은 제거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정상회담 혹은 남북 대화에 대한 지지율이 거의 90%에 육박했던 것은 색깔 공포가 약화되면 콘크리트 보수조차 깨진다는 걸 보여준다. 정치권을 비롯한 국민이 극우세력의 색깔 공격에 위축되지 않고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며 용감하게 싸운다면 보수를 축소, 약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면 민주당 주도의 비례연합정당에 진보당이 참여한 것을 두고 극우세력이 색깔 공격을 할 때 민주과 비례연합정당, 나아가 국민들이 그것에 정면으로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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