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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추론-데이터 충돌 땐 둘 다 의심해야(1)

오늘은 글이 길다. 평소의 두 배 넘는다. 칼럼이라기보다는 보고서에 가깝다. 주제가 여론조사라 여러 데이터를 소개하고 해석해야 해서 짧게 쓰기가 어려웠다. 미리 독자들의 양해를 청한다. 어렵지는 않으니 안심하시라. 술술 읽을 수 있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총선 여론조사 흐름이 달라졌다. 2월 첫 주가 시작이었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 평가와 국힘당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했다. 정부를 지원하려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되어야 한다는 응답 비율도 함께 높아졌다. 논리적으로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데이터는 분명 그랬다.
평론가들은 여러 설명을 내놓았다. ‘한동훈 현상’?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있다 해도 왜 2월 첫 주부터 나타났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의대 정원 확대와 전공의 파업에 대한 강력 대처? 그건 무조건 윤석열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들고 나온 새로운 명분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민주당 공천 파동? 2월 여론조사의 핵심은 민주당 지지율 하락이 아니라 대통령과 국힘당 지지율 상승이라서 적절한 설명이라 하기 어렵다. 2월 여론조사는 수수께끼 같다.
그래서인지 도처에 문어가 출몰한다. 어떤 평론가는 국힘당이 지난 총선의 민주당과 비슷한 압승을 거둘 것이라고 한다. 친윤 언론은 앞을 다투어 그 주장을 전파하면서 그가 4년 전 민주당 180석을 정확하게 맞췄다고 강조한다. 지난번에 맞췄으니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그런데 그가 4년 전 언제 어디에서 누구한테 그런 예측을 했는지 나는 들은 바 없다. 언론보도를 뒤졌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그가 김태우 후보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당선을 예측했다는 사실을 친윤 언론은 모른 척한다.
국힘당의 어떤 총선 후보는 자기네가 160석을 얻는다고 말했다가 비대위원장한테 지청구를 들었다. 나는 그를 좀 안다.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한 민주당 소속이었던 그가 2004년 총선 직전 방송 카메라 앞에서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폭락하는 중이라고 외치던 장면을 지금도 떠올릴 수 있다. 얼마 전에는 한국이 사우디를 역전해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는 데 성공할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잘못이 없다. 그런 사람의 주장을 받아쓴 기자들이 잘못했다.
극소수밖에 없는 진보 성향 신문들은 다른 문어를 띄운다.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사람이다. 1월에는 아무 맥락이 없는 시뮬레이션 결과라는 걸 보여주면서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으면 국힘당에 과반 의석을 빼앗긴다고 주장하더니 요즘은 주로 한국갤럽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들어 민주당의 참패를 단언한다. 진보 진영과 민주당 일각의 이재명 비토 정서를 그런 방식으로 표출하는 게 아닌가 싶다.
미디어에서 활약하는 문어들은 2월 여론조사가 총선 민심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전제한다. 그걸 의심하는 사람을 진영논리에 갇혀 사실을 부정하는 멍청이로 여긴다. 정말 그럴까? 여론조사 데이터를 절대 신봉한다면 그렇게 말해도 된다. 그런데 데이터가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적절하게 해석해야 들리는 것도 있다.
만약 데이터가 경험적 논리적 추론과 충돌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단 둘 모두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넉 달 전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때 보지 않았는가? 국힘당 후보의 참패와 득표율 격차를 제대로 맞춘 여론조사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 시기 전화면접 조사를 하는 NBS 전국여론조사의 서울 지지율은 국힘:민주가 31:23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의 서울 지지율은 32:36으로 오차범위에 있었다. 언론이 보도한 강서구 여론조사는 리얼미터의 ARS 조사 두 개뿐이었는데 각각 7퍼센트와 10퍼센트 정도 진교훈 후보가 앞섰다. 언론이 진보편향 여론조사를 한다고 비웃었던 여론조사꽃은 실제 격차를 거의 정확하게 예측했다. 한편 이준석 전 국힘당 대표는 21대 총선 강서구 득표율 격차만큼 진교훈 후보가 이길 것이라고 했다. 경험적 논리적 추론이 데이터를 제압한 셈이다.
금년 2월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가 올랐다고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 40퍼센트 선에 턱걸이했을 뿐이다. 이것이 총선 민심의 가장 중요한 지표다. 국정수행 지지율이 낮은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보다 경제성적표가 참혹하다. 경제성장률이 반 토막 났고 무역적자는 세계 최악 수준에 근접했다. 물가상승률은 두 배가 되었고 모든 소득계층의 실질소득과 순자산이 감소했다. 이태원 참사와 청주 지하도 참사 등에서 보듯 안전 관리와 재난 대처에 극도로 무능했다. 도이치 모터스 사건 공범 재판에서 대통령 부인의 주가 조작 가담 혐의가 명백한 사실로 드러났고 디올 백 추문까지 불거졌는데도 검찰과 경찰은 수사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김건희 특검법을 거부했고 국힘당은 국회 재의결에서 반대표를 행사해 특검법을 폐기했다. 대통령은 야당과 단 1초도 대화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검찰권을 동원해 흠집을 내는 데만 열을 올렸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가운영 비전을 밝히는 집권당 대표의 책무를 팽개치고 악플러 수준으로 야당을 비방하는 일에만 몰두해 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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