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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현상

신문, 방송과 유튜브에서 유시민이름이 언급되지 않는 날이 하루라도 있을까. 윤석열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있겠지만, 유시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윤석열 이름은 경멸과 분노를 사는 이름이지만 유시민 이름은 존경과 감탄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대정신을 호흡하고 선도하는 유시민을, 나는 유시민 현상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독일에 문학 교황이라는 호칭이 있다. 이 호칭이 특정한 직위나 직업을 가리키진 않지만 사람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비평가를 천박하고, 독선적이고, 과장을 좋아하는 문학 교황이라며 빈정댔다. 처음부터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좋든 싫든, 문학 교황의 말을 우선 듣고 싶어한다.

실력있는 문학 평론가를 문학 교황이라고 부른다면
, 존중받는 정치 평론가를 뭐라고 부를까. 정치 교황 어떤가. 나는 유시민을 정치 교황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유시민에게 묻고 싶고, 듣고 싶다. 중요한 시국에 대해 유시민에게 한 말씀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유시민처럼 말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글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쓰라고 조언했다. 정확하게 쓰다 보면, 저절로 아름답게 된다. 그러나, 아름답게 쓰는 글이 반드시 정확한 글은 아니다. 그 순서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확하고 아름답게원칙에 유시민은 쉽게원칙을 추가했다. 유시민의 글과 말은 정확하고, 쉽고, 아름답다.
유시민의 글과 말 솜씨는 독일 유학 시절에 더욱 부드럽고 탄탄해진 듯하다. 독일 대학에서 토론 시간은 중요하다. 10여 명이 참석하는 90분 세미나에서 학생들은 짧은 시간에, 핵심 내용을, 정확히 말해야 한다. 첫 문장에 결론, 둘째 문장에 사례, 셋째 문장에 요약이다.

말과 글의 구조와 전개 방식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 말하는 자세와 듣는 자세가 또한 중요하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 듣는다. 길게 말하는 사람이 지고, 짧게 말하는 사람이 이긴다. 물론, 이기려고 토론하는 것은 아니고, 배우려고 토론한다.

토론이나 방송에서 30초 넘는 질문이나 2분 넘는 답변을 기억할 시청자는 많지 않다. 토론의 달인들은 질문을 간단하게, 답변도 간단하게 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토론과 말하기에 유난히 탁월한가. 최동석 교수, 김상봉 교수, 백승종 교수를 우선 손꼽을 수 있다. 정확하게, 쉽게, 아름답게 말하는 분들이다.
유시민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을 검토하고 듣는 사람의 처지를 배려한다. 시청자 위주의 말하기와 독자 위주의 글쓰기는 유시민의 빼어난 장점에 속한다. 유시민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유머까지 갖추어 버렸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 한국에서 모든 말은 유시민에게 통한다. 유시민은 거대한 호수와 같다. 말은 우선 유시민에게 흘러 들어가고, 그 후 말은 유시민에게서 정제되어 나온다.

이재명에게서 전태일 향기가 난다면
, 유시민에게서는 김대중 향기가 난다. 상인의 현실 감각을 탑재한 유시민은 탁월한 지식 도매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유시민은 노력하는 사람이다. 유시민의 성실함과 학습 능력은 언제 보아도 놀랍다. 천재가 성실하기까지 하다면, 그 누가 당하리오.

경제학에서 탐구를 시작한 유시민은 역사와 정치를 거쳐 과학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과학을 들여다보니, 인문학은 공중에 매달아 놓은 집처럼 유시민은 느꼈다. 요즘 유시민은 인간은 누구인가질문에서 인간은 무엇인가로 질문을 옮겼다.

그런데
, 유시민은 요즘 들어 기운이 조금 떨어진 듯하다. 내 관찰이 제발 틀렸기를 빈다. 유시민은 이제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한 것일까? 그의 고백처럼, 그냥 세상과 불화하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에 일정 부분 숙이고 들어가는 것일까? “한 인간이 인생에서 쓸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이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나는 부인하지 못할 비애를 느낀다.


바울이 예수운동의 현안을 거의 혼자 해설하고 감당해야 했듯이
, 유시민은 한국 현대사의 현안을 거의 혼자 해설하고 감당하다시피 해왔다. 한국 사회는 유시민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 한다.

유시민은 철학과 종교에서 새로운 전환을 찾을 듯하다. 물론 유시민은 철학과 종교에도 범상치 않은 식견을 이미 지니고 있다. 한 발짝 더 철학과 종교에 들어가면 어떨까. 유시민이 세상과 불화하는 게 너무 힘들다면 철학과 종교에서 그는 새로운 회복의 힘을 거뜬히 얻으리라고 나는 기대한다.

2 유시민, 3 유시민은 언제 탄생할까. 한국 사회의 공론장을 무려 30년 넘게 독주해온 유시민을 누군가는 뛰어넘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시민 현상 뒤에는, 많은 논객들의 게으름과 불성실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시민은 우리에게 분발하라고 재촉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가 충만한 채로 불의한 세상에 저항하고 부딪쳐주기를 유시민은 바라고 있을 것이다.

유시민 항소 이유서에 인용된 러시아 작가 네크라소프의 말을 나는 대학 시절부터 기억하고 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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