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수사외압' 수렁에 빠진 국힘당(1)
지금의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당 지도부 전원이 석고대죄하거나 오체투지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집권 세력이 총선 국면 한복판에서 중요 사건 피의자를 대사로 임명하여 해외로 도피성 출국을 시킨 선 용서받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론에 밀려 이종섭 대사가 귀국할 것으로 알려진 그 날,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며 더 오만한 태도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 말인즉슨 한동훈 위원장 본인이 대통령실에 직언하여 이 대사를 귀국하도록 했으니 할 일을 다 한 것 아니냐는 사뭇 고압적인 태도다. 그러면서 한 위원장은 공수처 더러 이 대사를 소환하라며 소환도 하지 않은 공수처가 “정치질을 하고 있다”고 비난까지 했다. 이 말은 그나마 국민의힘에 우호적인 중도층 마저 완전히 등을 돌리게 하는 자해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 말이 나온 이튿날인 21일에 인천공항에 나타난 이종섭 대사는 자신의 귀국이 주요 방산 협력 국가 공관장 회의에 참석하고 한·호주 2+2회담(외교·국방 장관회담) 실무준비 차 귀국한 것이라고 짤막한 입장을 밝혔다. 이 대사는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귀국한 당일에 신원식 국방장관을 찾아가 방산 수출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분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 하겠다는 태도다. 한마디로 넌센스다. 급조된 방산 협력국 공관장 회의는 호주 외에도 중동과 유럽 국가 방산 협력 6개국 공관장이 모이는 회의다. 만일 방산 협력차 국방부와 논의할 내용이 있다면 6개국 공관장이 전부 국방장관을 찾아가야지 왜 이종섭 대사 혼자만 간 것인가. 게다가 이 대사는 국방부에 이어 외교부도 ‘개별적’으로 찾아갈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또한 이상한 일이다. 굳이 혼자서만 두 장관과 할 이야기란 게 도대체 무엇이겠느냐는 거다. 이 또한 중요 사건 피의자가 소환을 앞두고 외교·국방 두 장관과 입을 맞추고 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의도로 의심받을 만한 일이다. 공수처 소환을 앞둔 피의자가 채 상병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던 당사자들이 즐비한 국방부를 찾아가는 자체가 증거인멸이나 수사 방해 목적이 아니냐는 거다. 더 황당한 일은 이 대사가 한·호주 외교·국방 장관회담 실무준비 차 방문했다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런 장관 회의가 열린다면 이 대사는 호주의 외교·국방부를 접촉하여 한국과 교류할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해서 고국에 알릴 의무가 있다. 회담 준비라면 호주 현지에서 해야 할 일이지 국내에 들어와 휘젓고 다닐 성격의 일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양국의 장관회담이 열린다면 상대 주재국 대사는 장관을 돕는 일종의 실무 보좌 역할을 하게 된다. 회담 대표인 현 국방장관을 전 국방장관이 보좌하는 실무자라는 설명은 격에도 맞지 않는다. 만일 실무 준비가 필요하다면 부대사를 보내도 될 일이다. 더구나 양국 간의 외교·국방 장관회담은 2021년 9월을 마지막으로 지난 2년 6개월 동안 열리지 않았다. 그런 회담을 언제, 어디에서 다시 열 것인지 아직 날짜나 장소 등 기본사항 조차 정해진 바 없는데 국방장관 출신 대사가 직접 주재국과 본국을 오가면서 그것을 실무 준비한다는 것이다. 한동훈 장관이 “정치질 한다”고 비난하는 공수처가 이번 이종섭 장관을 소환할지도 불분명하지만 큰 의미도 없다. 만일 이 대사가 공수처 조사를 받게 하려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먼저 할 일이 있다. 이 대사는 작년 7월 말 채 상병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대사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에 압력을 행사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사실상 공범 혐의로 공수처에 의해 출국금지 요청이 된 피의자다. 한 위원장이 공수처 수사에 협조하려면 자신이 천안갑 지역구에 공천장을 준 신범철 후보부터 공수처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대사의 공수처 소환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한 위원장은 그런 용단을 내릴 의향이 과연 있느냐, 이것이 이종섭 파문의 다음 단계다. 이왕이면 작년에 대통령실 안보실 2차장으로 해병대 사령관에 3번이나 전화했던 임성득 영주·영양·봉화 국민의힘 후보 역시 공수처에 출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 더더욱 한 위원장의 말에 진정성이 실릴 것이다. 이 대사에 대한 공수처 소환이야 이런 공범들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이루어질 일이니 한 위원장만 협력하면 훨씬 수월할 것인데,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면 더 중요한 결단이 필요하다. 공수처 수사야 어차피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대사가 항명으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에 대한 1심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다. 지금 여론의 관심이 온통 공수처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더 중요한 박 대령에 대한 재판은 간과되고 있다. 22일 용산 군사법정에서 열린 박 대령에 대한 3차 공판에서는 작년 7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결과를 “이첩하지 말라”고 명령한 당사자가 “바로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이었다는 이윤세 해병대 정훈공보실장의 증언이 나왔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