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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상병 수사외압' 수렁에 빠진 국힘당(2)

한동훈 장관이 정치질 한다고 비난하는 공수처가 이번 이종섭 장관을 소환할지도 불분명하지만 큰 의미도 없다. 만일 이 대사가 공수처 조사를 받게 하려면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먼저 할 일이 있다. 이 대사는 작년 7월 말 채 상병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대사의 명령을 받아 해병대에 압력을 행사한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사실상 공범 혐의로 공수처에 의해 출국금지 요청이 된 피의자다. 한 위원장이 공수처 수사에 협조하려면 자신이 천안갑 지역구에 공천장을 준 신범철 후보부터 공수처 조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이 대사의 공수처 소환은 그 다음의 일이다. 한 위원장은 그런 용단을 내릴 의향이 과연 있느냐, 이것이 이종섭 파문의 다음 단계다. 이왕이면 작년에 대통령실 안보실 2차장으로 해병대 사령관에 3번이나 전화했던 임성득 영주·영양·봉화 국민의힘 후보 역시 공수처에 출석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면 더더욱 한 위원장의 말에 진정성이 실릴 것이다. 이 대사에 대한 공수처 소환이야 이런 공범들에 대한 수사를 마치고 이루어질 일이니 한 위원장만 협력하면 훨씬 수월할 것인데, 이에 대해 말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한 위원장이 국민의힘을 수렁에서 건져 올리려면 더 중요한 결단이 필요하다. 공수처 수사야 어차피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이 대사가 항명으로 기소된 박정훈 대령에 대한 1심 군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도록 촉구하는 일이다. 지금 여론의 관심이 온통 공수처에 집중되어 있다보니 더 중요한 박 대령에 대한 재판은 간과되고 있다. 22일 용산 군사법정에서 열린 박 대령에 대한 3차 공판에서는 작년 7월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결과를 이첩하지 말라고 명령한 당사자가 바로 이종섭 당시 국방장관이었다는 이윤세 해병대 정훈공보실장의 증언이 나왔다.
이 실장은 작년 해병대 수사와 이첩을 재가하던 이종섭 당시 장관 주재 회의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주재 대책 회의에 모두 참석한 인물이다. 변호인 측에서 요청한 증인도 아닌 이 실장의 소신 있는 증언은 이종섭 대사가 박 대령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야 할 중요한 이유를 말해준다. 한 위원장이 이종섭 대사에 대해 이런 모든 재판과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하지 않는 한 어떤 국민이 한 위원장의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겠는가. 국민의힘이 선거에 폭망하는 이유가 더 쌓일 뿐이다.
이번 사태의 가장 기이한 점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공수처와 야당을 공격하면 할수록 국민의힘 지지율이 곤두박질친다는 데 있다. 22일 한 총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에 앞서가던 신범철 국민의힘 천안갑 후보가 역전 당했다. 그 이전에 승리를 장담하던 수도권 국민의힘 후보들 상당수가 야당에 밀리거나 역전당하고 있다. 초박빙으로 흐르던 총선 판세가 국민의힘의 급격한 추락으로 기울어진 이유 중 하나는 이 대사 부임을 전후한 대통령실의 숱한 거짓말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수사 외압의 증거들로부터 나왔다. 이제는 이 거짓을 주워 담을 수도 없어 국민의힘은 당분간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에 빠졌다. 작년 731일부터 82일까지 대통령실과 국방부와 해병대 간에 오고 간 수많은 통신기록과 공문서, 메모 등 외압의 증거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더 이상 집권세력이 거짓으로 이를 수습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 한동훈 위원장의 오만한 언행은 국민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겨 다가올 총선에서 심판의 날을 예고하는 지경에 이른다.
2014년 윤승주 일병 사망 사건, 2021년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이 뼈아픈 반성을 통해 새로 탄생한 군 사법질서는 군의 제 식구 감싸기를 엄격히 차단하고 통제하기 위한 장병 인권의 마지막 보루였다. 군의 수사권을 제한하도록 장병들의 피와 희생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사법 질서에 대해 국민들은 80%대의 압도적인 찬성을 보여주며 이제 다시는 군에서 은폐와 조작이라는 악습을 근절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새로운 사법질서 하에서 첫 번째 군 장병 사망 사건이 바로 채 상병 사망 사건이었고, 바로 여기서 수사 외압과 은폐가 자행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우리 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따라서 이 사건은 단순히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직권남용과 권리행사방해라는 법률적 문제를 넘어 국가안보의 중추를 흔들고 군의 공정과 정의를 훼손하는 이적 행위에 가깝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외압과 조작, 거짓말로 군 사법질서에 도전하는 대통령실과 국방부에 대해 국민의 불신과 분노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는 점을 대통령실과 여당만 모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역으로 다가올 총선에서 국민들에게는 선명한 투표의 기준을 제시하는 망외의 소득이라 할 수 있을까? 인권의 역사를 전부 뒤집어 엎으려는 정권의 무도함을 심판할 수 있는 주권자의 역량을 표출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건강하다는 것을 내외에 과시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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