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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여론조사는 반드시 틀린다(2)

여론조사는 이번 총선이 4년 전과 비슷한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민주당은 151석만 달라고 한다. 국힘당은 열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야당을 심판하자며 공세를 편다. 두 정당 모두 여론조사 결과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여론조사는 밴드왜건(band wagon) 효과와 언더독(underdog) 효과를 일으킨다. 밴드왜건 효과는 유행과 대세를 따르는 심리를, 언더독 효과는 약자의 추격을 응원하는 심리를 가리킨다. 두 정당은 공히 여론조사를 못 본 척한다.
그들은 포커 게임을 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펼쳐놓은 카드다. 액면을 보면 민주당이 크게 우세하다. 하지만 게임의 결과는 아직 모른다. 히든카드가 남아 있다. 투표율이다. 그냥 투표율이 아니다. 두 정당 지지자의 투표율이다. 국힘당 지지자는 전원이, 민주당 지지자는 절반만 투표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여론조사와 달리 여당이 압승한다.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동훈은 이재명과 조국을 범죄자로 규정하고 종북주의 이념공세를 펼치면서 야당을 심판하자고 외친다. 허세다. 무엇을 위한 허세인가? 윤석열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국힘당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불러내기 위한 허세다. 압도적 열세를 인정하고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101석만 달라고 읍소할 경우 언더독 효과보다 밴드왜건 효과가 분위기를 압도할 위험이 있다. 무당층 유권자가 대세를 따르고 국힘당 지지자들이 사기가 떨어져 투표를 포기할 경우 여론조사가 예고하는 것보다 더 참혹한 패배를 당할 수 있다. 그래서 한동훈은 속이 뻔히 보이는 허세를 부린다. 합리적인 판단이다.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이재명은 제1당과 민주당 단독 과반 의석 획득을 강조한다. 유권자들은 대부분 어느 후보에게 표를 줄지 이미 결정했다. 어지간한 일로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막판 결집은 정치적 판단의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지지층의 투표율이 극적으로 상승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율을 높이고 국힘당 지지층의 막판 결집을 막으려고 이재명은 민주당이 조금 우세하다고 말한다. 역시 합리적인 판단이다. 조국당은 엄살도 허세도 부리지 않는다. 언더독 효과와 밴드웨건 효과를 동시에 누린다. 당대표 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당의 서사(敍事, narrative)로 만들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되면서 윤석열의 사냥감이 되었고 법률적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듯했다. 조국신당이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을 때 정치비평가들은 그를 폄훼하고 비웃었다. 그러나 그는 창당의 기치를 들고 세상에 나와 자신과 가족을 사냥했던 윤석열과 한동훈을 상대로 인생을 건 결투를 신청했다. 처음에는 언더독 효과가 조국당을 키웠다. 조국당은 밴드왜건 효과를 타고 비례대표 득표 경쟁에서 대세를 잡았고, 중도층을 전선으로 끌어들여 민주당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 기반을 넓혔다. 정치 신인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총선의 판도에 큰 영향을 준 사례는 우리 정치사에 처음이다.
정치평론가들은 투표율이 마지막 총선 변수이고,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당이 유리할 것이라고 말한다. 4년 전 총선 투표율은 66.2퍼센트였다. 직전 대선 투표율 77.2퍼센트와 직전 지방선거 투표율 60.2퍼센트의 중간 수준이었다. 직관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유권자들은 대선을 총선보다, 총선을 지선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번에는 어떨까?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 보자. 직전 대선 투표율 77.1퍼센트와 지선 투표율 50.9퍼센트의 평균값은 64퍼센트다.
나는 이번 총선 투표율이 그보다 높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쩌면 70퍼센트를 넘길지도 모른다. 0.7퍼센트 차이로 승부가 났던 대선의 연장전 같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리콜(recall) 선거로 볼 수 있다. 괜한 말이 아니다. 여론조사 데이터를 보라. ‘여론M’이 산출한 3월 마지막 주 전체 여론조사의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부정 비율이 장기 추세선 35:60과 정확히 일치했다. ‘매우 잘못한다고 평가하는 국민이 절반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통계적 잡음이 만든 2월 여론조사의 착시현상이 사라지자 오래된 민심이 드러났다. 시민들은 대통령과 여당이 국정을 성실하게 운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 여론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집권세력에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하는 방법이 투표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전체 투표율이 올라가는 게 자연스럽다. 선거여론조사는 미래를 보여준다.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마주하고 싶다면 투표를 해야 한다. ‘그깟 투표권이라고 말하지 말자. ‘투표하는 날만 주권자라는 냉소에 흔들리지 말자. 우리가 가진 것은 그깟 투표권이 전부다. 그것 말고는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관철할 평화적 수단이 없다.
투표권은 인류 문명의 역사 수천 년 동안 필설로 다 할 수 없을 고난, 투쟁, 헌신, 희생을 치른 끝에 가까스로 얻은 민중의 무기다. 종이로 만든 탄환이다. 독재자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게 아니다. 시민 각자의 무관심과 잘난 비평가들의 정치적 냉소도 민주주의를 죽인다. 투표하지 않는 당신, 세상을 망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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