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 재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할 때 기업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인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그런데 중대 재해는 산업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피해자가, 보도된 것만 따져도 매년 수십 명에 달하는 지경이다. 그런데 검찰이나 경찰 조직, 또는 검찰총장이나 경찰청장에게 책임을 물은 사례는 없었다. 검찰의 선택적 기소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이 주가조작에 연루되었고, 공범들은 모두 처벌받는 중대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났어도 기소는커녕 소환조사 한 번 하지 않는다. 정적의 자녀에 대해서는 인턴 시간이 부족하다고 가혹하게 처벌하면서, 대필한 논문을 실적으로 제출한 검사의 자녀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하지 않는다. 인턴 시간 부족한 것이 범죄라면, 법무연수원 시절 누구나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법무법인 인턴 시간을 지키지 않은 대부분의 판사와 검사들도 옷을 벗어야 한다. 이처럼 정의롭지 않은 사법권력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커다란 장애 요인이다. 선거철에 뜬금없이 대파가 고통받는 민생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물가를 책임지는 공식 기구는 한국은행이다. 한국은행법 1조는 한국은행이 물가안정을 책임지는 기관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물가에 책임을 져야 하는 한국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최고의 경제권력을 휘두르지만 놀랍게도 책임을 지지않는 기구가 되었다. 정치권도 언론도 한국은행은 아예 비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니, 서민경제를 위한 통화정책은 앞으로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출산 대책으로 지금까지 300조 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출산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는데 오히려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면, 그 예산을 집행한 기획재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수십 년간 낭비적인 예산을 똑같은 방식으로 편성하고 집행해 왔다는 것인데, 그 조직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개선을 바란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최고 권력기구들은 대부분 책임지지 않고 간섭받지 않는 절대권력이 되었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들이 자기들만의 성역을 구축하고, 조직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의적 권력을 행사하며 민주주의의 장애 요인이 되었다. 삼권분립에 의해 이러한 권력기구들을 감시하고 개선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국회가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않는 탓이다. 국회가 정부와 사법 기구가 권한에 맞는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드는 입법을 하고, 그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기능을 소홀히 한 탓이다. 책임을 묻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임지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공식적인 책임은 없더라도 권력의 문제를 밝혀 비판하는 중요한 기구가 언론인데, 한국의 언론은 이 책무를 망각하고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 국가 소멸 위기를 맞은 국가에서 선거를 치르고 있다면 언론은 당연히 각 정당에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묻고 평가해야 한다.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들어 각 정당에 해법을 촉구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아가는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은 국가 위기를 해결할 정책을 논의하기보다는 스포츠경기 중계하듯, 예능 프로그램 진행하듯 각 정당의 태도나 비위 문제를 편파적으로 다루고 있다. 모두 수익성만 쫓아다니는 황색 언론화되어, 존망의 위기를 맞은 국가의 선거에서 정책 논의가 실종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언론 역시 책임지지 않는 권력으로 전락한 결과다. 이대로 국가가 무너지면 언론의 책임이 크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언론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린 탓이 가장 크다. 새로운 언론이 필요한 이유이고, 신생 언론들은 기성 언론의 폐습을 답습하지 않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한국은 국가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저출산으로 국가가 빠르게 소멸 국면에 들어서게 되면서, 경제 몰락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과도한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은 공동화되고 있으며 양극화에 따른 경제력 집중으로 중소기업과 자영업, 서민 경제는 파탄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맞은 선거에서 우리는 좀 더 국가적 과제들에 대한 논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선출된 정치인을 통해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국민의 통제 하에 둘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선거이다. 불행하게도 이미 본분을 망각한 정치권과 언론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선거를 치르기는 어렵게 되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행동이 필요할 때다. 국가 위기 앞에서 권력에만 혈안이 된 정치를 단죄해야 한다. 국민을 위해 사용하라고 부여한 권한을 자신의 권력을 위해 사용한 세력을 심판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 기구를 제대로 재편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입법, 사법, 행정의 국가 기구에게 그 권한에 맞는 책임을 지우기 전에는 국가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권력기구에 대해 책임질 것을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