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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 당선인들이 해야 할 과제들

일반적으로 한 정권의 집권 기간 중간쯤에 열리는 선거를 중간선거또는 중간 평가 선거라고 부릅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뒤 2년 가까이 된 시점에 실시되는 4·10 22대 국회의원선거는 전형적인 중간 평가 선거입니다. 윤 정권이 2년 동안 잘했다고 생각한다면 지지표를 던져 정권에 힘을 실어주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반대표를 던져 정권에 경고를 보내는, 수많은 보통의 중간선거 중 하나일 뿐입니다. 대체로 중간선거에서는 집권 세력이 불리하다는 평가가 많지만, 경험으로 볼 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정권 하기 나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22대 총선은 분위기가 전혀 딴판입니다. 단순한 중간 평가의 의미를 넘어 정권 응징 선거로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습니다. 순전히 집권세력인 윤석열 정권이 자초한 일입니다. 저는 그 극명한 상징이 대파 파문이라고 봅니다. 대파 한 단이 총선의 성격을 중간 평가에서 정권 응징으로 확 바꾸어 놨습니다. 식재료의 하나인 대파가 사나운 큰 물결(大波)을 이루더니 금세라도 윤 정권을 대파(大破)시킬 기세로 몰아치고 있는 형세입니다.
윤 대통령이 정부 지원금에 할인과 할인을 거듭하며 매긴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대파 1단 값 875원을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내뱉기 훨씬 전부터, 민심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사과 1개가 만원이나 돼 설날 차례상에도 올리지 못했다는 서민의 한숨소리가 방방곡곡에서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개입으로 공수처의 수사를 받는 주요 피의자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 대사로 임명돼 도피 출국하는 사건으로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있었습니다. 우익단체를 관할하는 대통령실의 황상무 시민사회 담당 수석비서관이 비판 언론을 겨냥해 회칼 테러를 겁박하는 말을 내뱉자, 기자들만 놀란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민들이 물가고에 신음하고 지식층은 이종섭·황상무 사건에 공분하고 있던 차에, 윤 대통령의 문제의 대파발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 발언이 서민과 지식층의 불만과 분노를 한꺼번에 묶어 터뜨리는 뇌관이 됐습니다.
대파의 엄청난 파급력에 당황한 여권은 이를 막으려고 무리수를 쓰다가 오히려 대파의 위력을 더욱 키워줬습니다. 국민의힘 수원시정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씨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윤 대통령이 말한 875원이 파 한 단이 아니라 파 한 뿌리의 값이라고 방어에 나섰다가 맹폭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정신을 차렸나 했더니 이번에는 윤 대통령의 서울법대 동기가 사무총장으로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배턴을 이어받았습니다. 사전투표일에 맞춰, 대파를 정치적 의도가 있는 표현물이라고 규정하면서 투표소 반입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이 지침이 오히려 선거 막판까지 대파 물살을 가파르게 했습니다. 대파 파동이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강하게 지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민생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민생의 어려움을 윤 대통령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파 발언을 통해 모두가 눈으로 귀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집권 이후 한시도 쉬지 않고 검찰 독재를 펴면서 끊임없이 정적 제거를 꾀하고, 비판 언론 및 여론의 입을 틀어막으며, 민생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부자를 위한 정책만을 펴 온 윤 대통령은 대파선거의 가장 큰 주역이자 책임자입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길거리의 민심을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하고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기는커녕 시종일관 윤석열 아바타로 행세한 한동훈 씨는 대파 선거의 제1급 도우미입니다. 그 외에도 이번 총선에서 윤 정권을 대파(大破) 지경으로 몰아넣는 데 도움을 준 세력이 부지기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딱 두 곳을 꼽는다면, 저는 주저 없이 검찰과 미디어를 들겠습니다.
검찰은 윤석열 집권 내내 국민의 검찰이 아니라 윤석열의 개노릇만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야당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선거 전날인 9일까지 법정에 불러내며 간접적으로 선거방해를 하는 데도 검찰이 깊게 개입하고 있습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만 세 번째 재판 출석입니다. 미디어도 검찰 못지않게 책임이 큽니다. 친윤 언론 <조선일보>의 편파적인 사설과 칼럼에서 여실하게 확인할 수 있듯이, 조중동과 <한국방송>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 미디어들은 언론의 탈을 쓴 친윤 선전·홍보 도구임이 이번 선거 보도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류희림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백선기의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선거운동 기간에 전혀 눈치도 보지 않고 뻔뻔하게 윤 정권에게 불리한 보도에 몽둥이를 휘둘렀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블랙 코미디가 선거방송심의위가 <문화방송>의 날씨 예보에 파란색 ‘1’ 자를 표시했다고 최고 수준의 징계인 관계자 징계를 의결한 것입니다. 중요한 건 지금 한국의 미디어 상황이 조지 오웰의 ‘1984’ 수준으로 후퇴·타락했다는 사실입니다. 검찰 못지않게 미디어도 총선 이후 크게 개혁해야 할 대상입니다. 방심위와 같이 공적인 조직은 법을 개정해서라도 해체 뒤 재조립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할 것입니다. 사영 언론도 폭주를 견제하고 제어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대파 선거로 윤 정권을 대파시켰다고 만족하지 말고, ‘국민 무시-민생 파탄의 구조를 하나하나 또박또박 뜯어고쳐야 합니다.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은 그 출발점이자 종착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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