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조광조의 개혁

조광조의 개혁은 왜 실패하였을까? 혹자는 그의 이상주의와 급진성을 들기도 하고 혹자는 개혁 지지기반의 상실을 원인으로 말하기도 한다. 퇴계는 명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세 전반을 파악지 못하고 정치적 타협이 없었다.”라고 주장하였으며, 율곡은 현철한 자질은 갖추었으나 학문이 무르익기 전에 출사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라고 진단하였다.
간혹 드라마에서는 중종의 변심에 방점을 두고 훈구사림두 대립 세력 간에 왕권의 친소관계에 따른 타협과 반목으로 정세의 반전을 극화시키며, 시청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모두가 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조선은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하여 유교적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사대부의 나라였다. 왕권과 신권의 견제와 균형이 이어졌고 성종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사림파훈구파의 대립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였다. 개국공신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의 전횡에 맞서 정몽주(鄭夢周), 김숙자(金叔滋), 김종직(金宗直), 김굉필(金宏弼),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지는 사림파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광조가 내세웠던 개혁의 명분은 위훈 삭제현량과 설치’, ‘소격서 폐지등이었다. 모두 다 국민 정서에 기반한 것으로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것들이었다. 민심과 시대정신을 앞세웠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혁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나의 주관적 견해임을 전제하고서 논하자면, 그는 사헌부의 수장으로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간관(諫官)’ 즉 언관(言官)에만 치중한 나머지 행정부[삼정승]의 실질적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울러 병권을 제어하지 못한 한계 또한 개혁기반의 동력을 상실하게 되는 원인의 한 축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명분과 이상이 옳으면 타협이 없이도 개혁이 가능할 것이라는 망상이나, 권력을 잡기만 하면 누구나 공직사회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명분과 공약, 스팩과 이미지 등이 아무리 좋아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기득권의 거대 악인 검찰 조직의 권력 카르텔과 공고한 관료주의의 이너서클을 지배하지 못한다면, 그런 정치인의 공약은 수사가 아무리 화려해도 허망한 구두선이요, 공염불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간 우리는 관리형 리더십의 한계를 뼈저린 고통 가운데 생생히 체험하였다.
정치를 지망하는 인사 가운데, 자신이 이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할 개혁적 리더를 자임하고자 한다면 그는 반드시 검찰과 관료사회를 능동적으로 선도해 나갈 능력과 철학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야만 한다. 검찰과 관료사회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만 있다면 언론의 폐해를 정화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세무조사의 철저한 시행만으로도 수구 언론의 망동은 쉽사리 잠재울 수 있다.
원래 겁이 많은 개가 사납게 짖어대는 법이다. 폭군 걸왕의 개가 성군인 요임금을 보고 짖어대는 것처럼, 개에게는 애당초 시비와 선악의 대상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개의 본성은 먹이에 있다. 먹이를 주기만 하면 누구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것이 개의 속성이다.
문제는 검찰과 관료주의의 혁신이다. 개혁을 요구하는 시대는 언제나 칼을 다룰 줄 아는 리더를 필요로 한다. ‘세종이나 정조와 같은 태평성대의 치세는 결코 어느 날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세종의 치세는 태종 이방원의 희생과 결단 위에서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태종은 왕권에 장애가 되는 것이라면 일가와 친인척 가신까지도 모조리 숙청하였다. 비정한 군주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권력의 정점에서 스스로 권력을 이양했던 조선의 유일한 왕이었다.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무엇보다 검찰과 언론의 개혁이 시급한 사회적 과제이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언년이의 귀환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조국(曺國)’의 법무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삭발을 거행하며, 그를 일러 국가 파괴 세력이라고 했다. 국민의당에 입당하여 안철수의 지지를 위해 눈물로 호소하기도 하였으며, 국힘당에 망명하여서는 핵관이들에게 팽을 당하였던 대표적 정치 철새이다. 나는 한때 조국의 정치참여를 강력하게 응원했던 적이 있었다. 장관 사퇴 이후 투쟁 대신 사과와 몸 낮춤으로 일관하던 지리멸렬한 그의 행동을 보면서 때를 기다리는 충정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최근 출사표를 던지며 제일 먼저 문 씨를 알현한 것에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이는 문 씨의 정치 노선을 계승하겠다는 그의 각오와 다짐이다. 실제 그는 문 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이었던 민정수석을 가장 오랫동안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권력 실세의 자리에서 그가 검찰과 법무 관료들을 한순간이라도 완벽히 장악한 경험이 과연 있었더란 말인가? 그의 고통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며, 마땅히 명예를 회복해야만 할 권리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치인으로서의 조국은 문재인의 시즌 2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지금은 난세이다. 세종과 정조와 같은 성군의 탄생을 위해, 태종과 영조와 같은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한 생계형 정치인들은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가 아니라 당신이 없어야 이 나라 정치가 발전한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