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민심의 홍수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윤 대통령이 결국 죽어도 하기 싫어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까지 제안하고 나섰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윤석열차가 궤도를 이탈해 잘못된 길로 질주한 지 너무 오래됐고, 지금은 도저히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기 때문이다. ‘이채양명주’와 ‘김건희 도이치 모터스’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가 윤석열차 궤도 이탈과 폭주의 명백한 증거들이다. 곧 본격적으로 제기될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에 대한 특검법 역시 그러하다. 사람들은 영수회담이 열릴 경우 민생을 최우선 의제에 올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고 또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진심으로 민생을 염두에 두고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 기대야말로 연목구어이며 삼척동자가 웃을 농담일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에게는 민생이 문제가 아니라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줄 수 있을지, 적어도 영수회담이 위기 탈출의 방법을 궁리할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지, 온통 그것만이 절실할 것이다. 반면 이재명 대표는 영수회담 기회를 이용해 ‘민생을 챙기는 야당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번 영수회담이 끝내 열리지 못하거나, 열리더라도 아무 성과 없이 끝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처지가 너무나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받아들이지 못할 요구를 할 것이며,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받아들여야 마땅하지만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요구를 할 것이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 총리 인준 등 내각 구성에 협조를 요청한다 한들, 앞으로 국정운영을 어떤 식으로 확 바꾸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에 걸맞은 인물을 내세우든가, 추천을 부탁하든가 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 온 행태를 보면 티끌만큼이라도 그 가능성을 찾을 수가 없다. 특검과 특별법은 더욱 그렇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특별법이나 특검법 어느 하나 민주당이 마음대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반면 이런 특검법들은 여차하면 바로 정권 붕괴로 이어질 폭발성을 내재한 사안이다. 범야권이 일치단결해 추진하고자 하는 ‘채 상병 사건 수사 외압 특검’은 더더욱 그렇다. 반면 윤 대통령에게는 그 대가로 줄 만한 것이 없다. 이렇듯 앞뒤가 꽉 막힌 상황에서 영수회담을 제안한 것 자체가 어떻게든 이 난국을 잠시라도 모면해 보고자 하는 꼼수로 비치는 이유다. 요즘 들어 부쩍 ‘민생이 우선이다’ ‘협치를 해야 한다’ ‘국회독재를 막아야 한다’는 소리들이 요란하다. 그런데 이런 소리들이 모두 야당, 즉 민주당을 상대로 나온다는 것이 해괴하다. 취임 이래 줄곧 야당과의 협치는커녕 거부권과 시행령을 앞세워 국회를 무시하며 검찰독재를 해온 장본인이 윤석열 대통령이고, 부자감세에 목을 매달며 속수무책 민생을 내팽개친 것도 윤 정권 아닌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는 ‘대파 총선’이라는 말도 불편하게 들린다. 물가고에 뿔이 나 있던 시민들이 윤 대통령의 “대파 한 단 875원은 합리적 가격”이라는 소리에 폭발해 윤 정권 심판선거를 했다는 분석이고 심지어 외국 언론까지도 그렇게 평가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대파 논란’은 윤 정권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여러 실정의 한 상징일 뿐, 심판을 벼르는 민심은 훨씬 더 깊고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고 본다. ‘이채양명주’가 그렇고 경제폭망, 망국외교, 검찰과 측근들의 인사 독식 등이 그렇고 입틀막까지 꾹꾹 한 덩어리로 농축된 끝에 폭발한 것이다. 이 모두가 견제받지 않는(혹은 견제받지 않으려는) 권력욕구로부터 비롯된 것이고,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관련된 것이며, 민심의 인계철선을 건드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민생은 민주주의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제대로 민생을 챙기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밥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있는 특검법과 특별법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건강성 여부를 직접 묻는 것이라면, ‘전 국민 민생회복지원금 25만 원 지급’이라는 민생의 한 조각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문제라는 얘기다. 그걸 두고 딜을 하려는 영수회담이라면 애초부터 성립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으되 지금 우리에게는 “민생 협치 평화 민주주의 중 제일은 민주주의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