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가 된 나라, 야권은 무얼 해야 하나(1)
20대 청년 시절에 읽었던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은 나에게 개안의 희열을 안겨준 책 중 하나였다. 근대 서구의 기계론적 세계관과 개인주의, 과학주의,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사회과학 방법론에 익숙했던 나에게 인간과 자연의 상호 연관관계, 그리고 지구 생명 전체의 작동을 총체적 관점에서 볼 것을 일깨워 주었다. 동아시아의 근대 이전의 불교사상이나 전통의학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생명체를 통합적으로 보는 사고의 전통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런 것을 잊어버리고 서양 물리학자의 눈으로 우리를 되돌아봐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도 가졌다. 그 이후 나는 소화가 잘 안돼 병원에 갈 때마다 카프라의 접근법을 생각했다. 이미 서양의학에서도 충분히 이론화되어 있지만, 소화가 잘 안되는 것은 위장만의 문제가 아니고, 위장은 심장, 폐, 그리고 뇌 등 모든 장기의 작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의식했다. 그래서 위장병을 위장약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몸 전체의 활력과 균형이 필요하다는 한의학과 카프라의 가르침대로 실천을 해왔다. 물론 몸의 어떤 부위에 외상을 입었을 때는 그 부위를 당장 외과적 방법으로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달려갔지만, 소화기능 저하 등 만성질환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온몸 전체의 정상화를 위해 시간을 할애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사회학자로서 나는 사회유기체론자는 아니지만, 사회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유기체와 유사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체로서 접근해야만 어떤 부분이나 영역에 문제가 생겼을 때 제대로 된 처방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는 개인으로 구성되지만 단순히 개인들의 집합 이상의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주로 경제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인정할 수 있으나, 인간은 경제적 동기 이상의 것, 소속감과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인정을 추구한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하니 출산 부부에게 1억을 주면 애를 낳을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나, 의대 증원이 시급하니 정부의 증원방침에 따르는 의대에게는 대폭 재정지원을 하겠다는 식의 정책으로는 이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경제문제도 그렇지만 사회문제는 극히 복잡한 여러 가지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고차방정식이며, 정부의 방향이 올바르고 충분한 재정과 정치적 의지가 있다고 해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어떤 사회문제가 생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회 전체의 작동과 연관되어 있으며, 단순히 개인들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의 이데올로기, 경제적 조건, 여러 정책과 제도, 사회의식, 그리고 정당과 사회단체의 힘 등 극히 복합적인 조건과 변수의 누적적 결과다. 장차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대폭 의대 증원을 하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 난항에 빠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방의료 서비스 확대를 명분으로 의대 정원을 늘려도 지방 의대생들은 결국 수도권으로 몰려올 것이고, 고교의 최상위권 학생들이 모두 의대를 지망해서 미래 우수 과학인력 공백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즉 의사 증원이라는 정책 하나에 한국 의료체제 나아가 사회경제체제 전체 문제가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에, 사회정책의 제도화는 거의 10년 이상 공론장에서의 논쟁, 이해 충돌의 조정,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청사진이 결합되어야 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의대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의 이기주의를 타박하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시장주의 의료공급체제, 그리고 의사들의 높은 특권의식과 정면으로 맞서서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사회정책 접근법은 거의 검사가 범죄자 수사하는 방식의 원시적 수준에 가깝다. 저출생 문제가 장차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기에 빠트릴 것이라는 여론이 비등하자 윤석열 정부는 급기야 저출생부를 신설하고, 대통령실에 저출생 수석을 신설하겠다고 한다. 이런 접근법이 출생률을 높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윤석열 정부의 각종 사회정책의 성과는 역대 최악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출생률은 0.65명으로 떨어져서 역대 최저기록을 갱신했다. 노동 부문은 더 심각하다. 지난 2년 동안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역대 최저인 3%에 그쳤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증가했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는 확대되었다. 사교육비는 연 27조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학교폭력은 지난 10년 이래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자가주택 소유자 비율은 약간 늘었으나 청년들의 자가 보유율은 더욱 낮아졌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한국의 여러 사회 지표가 이렇게 최악을 기록한 것은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종부세, 상속세, 양도소득세 감세조치로 2023년 한 해 동안 56조 원의 세수 결손이 발생했고, 이런 재정 결손은 거의 사회 전 분야의 지출 삭감으로 귀결되었다. 지난해 예산안 전체 감액 중 가장 비중이 큰 분야가 사회복지 분야였고, 그 중에서도 임대주택 지원에서 그 전 대비 5.6조 원이 삭감되었다. 윤석열 정부의 재정 축소와 작은 정부 기조는 시장지배적 사업가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고, 공공 사회정책이 지향해야 할 빈곤층과 사회적 약자들의 삶을 더욱 처참한 상태로 몰아넣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