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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가 된 나라, 야권은 무얼 해야 하나(2)

사실 정당한 과세를 일종의 징벌이라고 말하는 윤석열 정부는 국가의 재정 운영에서 노골적인 계급 편향성을 갖고 있었다. 법과 공권력 집행에서도 그러한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화물연대 파업 진압, 노조 세무조사, 노란봉투법 거부권 행사, 그리고 중대재해법의 사용자 처벌 유예, 체불임금 사업장에 대한 관리와 감독의 방기 등으로 인해 노조의 대항력과 교섭력을 일방적으로 약화시켰고, 이런 노사 간의 힘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하는 법과 행정 조치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은 심화되고 빈곤층의 삶의 조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사교육비가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청년 주거 빈곤이 더욱 악화되는 나라에서 어떻게 청년들이 결혼을 생각을 할 수 있겠으며, 어떻게 결혼한 커플이 출산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젊은 부부들의 출산 의지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주거, 교육, 돌봄, 복지의 여건을 더욱 시장의존형으로 만들면서 저출생부를 신설하는 것은 일종의 면피용 아닌가? 자사고를 존치하고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모순적인 태도도 그렇고, 의사 수를 늘려서 국민들의 의료서비스를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의료 상업화와 의료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모순적인 정책들도 모두 면피용이거나 사실상 기만적인 정책들이다.
취임 2년 이후 지지율로는 역대 최저인 24%의 윤석열 대통령이 장차 국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얻기도 어렵지만, 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의 동의와 협조를 얻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경제 안보뿐만 아니라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한국은 거의 총체적 난국에 처해 있다. 이대로 3년이 더 지나면 아예 국가가 기능 부재에 빠질 수도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며칠 전 민주당의 박찬대 원내대표는 1가구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언급했다. 이것은 종부세가 부자들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라는 윤석열 정부나 여당인 국민의힘의 생각과 박자를 맞춘 발언이다. 그러나 종부세는 집부자들에게 벌을 주자는 세금이 아니다. 서울이나 대도시에서의 집값 상승은 개인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의 결과이며, 부동산 가격상승과 같은 불로소득은 세입자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정의 수립의 차원에서 국가가 부과하는 것인데, 민주당이 그런 원칙을 접으려 한다.
민주당 원내대표의 이러한 발언은 기본적으로 집부자들을 달래서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려는 선거공학적 고려에서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 만하다. 물론 정당이 선거 승리를 언제나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준 것도 지난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민주당이 주로 선거만을 의식해서 부자 몸조심한 결과가 아니었던가? 지난 문재인 정부가 사회경제 분야에서 시도했던 약간의 개혁적 성과마저 이 정부 들어서 거의 원점으로 돌아간 이유는 바로 사회정책에 대한 기본 철학과 일관된 방향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박찬대 의원의 이번 발언은 또 한 번 거대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다시 지난 정부 방식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게 만든다.
사실 저출생, 주거, 교육, 노동권. 의료, 복지 등 사회정책의 여러 영역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뚜렷하게 차별적인 노선을 보여주지 않았으며, 약간의 개혁을 시도는 했으나 일관된 의지를 갖고 국민의힘을 설득하고 또 밀어붙이려 했는지도 의심스러운 점이 많다. 특히 사회정책의 접근법에서 국민의힘과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예를 들어 총선 당시 민주당의 저출생 정책안을 보면 신혼부부 1억 원 대출, 돌봄 무상지원 등 경제적 지원이 대부분이다. 이런 유인책이 약간의 효과는 내겠지만, 문제의 근원을 피해가는 점에서는 국민의힘과 별로 다르지 않다. 거대 양당은 지금 한국의 출생률이 이렇게 낮은 것은 기혼자들의 출산 기피에 기인하기보다는 아예 결혼 자체가 불가능한 데서 기인한다는 점, ‘돈이 없어서’ ‘집이 없어서결혼하지 못한다는 청년들의 고백과 전문가들의 진단을 외면한다.
윤석열 정부는 아예 거론할 것도 없지만 민주당 역시 사회정책을 국가와 사회의 장기적 지속가능성, 특히 탈공업화, 에너지 위기, 디지털화, 초고령화의 거역할 수 없는 추세, 그리고 수도권 초과밀화, 사회 서비스의 과도한 시장 의존적인 구조 속에서 어떻게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구조적 제도적 차원을 구분해서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이 잘 안 보인다. 그래서 비록 12석이지만, ‘사회권 선진국을 만들겠다는 조국혁신당이 사회적 의제를 선점해서 22대 국회를 이끌어갔으면 하는 기대도 한다.
사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 지역구 의원 중심의 의회 구성 자체가 이런 일관된 사회정책 수립과 그 관철을 위한 정치적 동원을 어렵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개혁이 사회개혁의 선행 조건일지 모른다. 사실 지난 30여년 동안의 중요한 사회개혁은 정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가 의제를 제기하고, 캠페인을 벌이고, 의원들을 압박해서 그나마 이 정도라도 온 것이다. 언제까지 정당은 여론 추이만 수동적으로 살필 것인가? 정책정당의 길은 아직도 요원한가?
어쨌든 윤석열 정부가 나라를 더 거덜내기 전에 야권은 사회정책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을 취해서 제대로 성과를 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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