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도 수박일까?” 우원식 의원이 민주당 당선자 총회에서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자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순식간에 퍼진 ‘의문’이었다고 한다. ‘좋은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민주당을 지지할 뿐, 사실 여의도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더더구나 1백 몇십 명에 이르는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 개개인의 활동이나 성향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의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여의도를 좀 안다는 사람들로부터 “아니다. (우 의원은) 꽤 괜찮은 정치인이다” “충분히 강성이다” “기대할 만하다” 등의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정치권 동향을 비교적 관심 있게 지켜보는 내 눈에도 우 의원이 수박계라는 증거는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다. 국회의원만 4선 포함, 30년 넘게 정치를 해오면서 지도자급 큰 정치인의 면모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의와 명분을 저버리고 내부 총질에 열중하는 수박 행태를 보인 적이 없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수박’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스트레이트 기사도 아니고 ‘누구누구는 수박’ 식의 인신공격용도 아니라면, 쉽게 그 의미가 전달되는 정치적 용어로서 개인 칼럼에서 차용하는 것은 예외라고 생각함) 오히려 그는 2013년부터 당내 ‘을지로위원회’(을 지키는 민생실천위원회)를 주도했고, 지난해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 사태 땐 보름간 단식 농성을 벌였으며,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홍범도 흉상 철거 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한 모범적인 정치인이다. 당내에서는 ‘합리적 행동파’로 분류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 의원이 꽤 괜찮은 정치인이어서 의장 역할을 잘 해낼 것이다’라는 답변은 ‘우원식 의원이 수박이냐, 아니냐’는 질문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충분치 않은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그 질문은 민주당 당원이나 지지자들을 포함한 민주시민들이 민주당의 차기 국회의장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받은 충격과 공포가, 그들 내면에서 들끓고 있는 ‘3년은 너무 길다’는 갈망과 부딪혀 일어난 파열음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질문은 단순히 우원식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아직도 민주당에 수박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수박들을 어떻게 믿고 검찰을 앞세운 윤석열 폭압정권과 싸울 수 있겠느냐”는 민주시민들의 성난 아우성인 것이며 22대 국회가 21대 국회와 전혀 다를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과 두려움까지 섞여 있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지난 2년 온갖 가시밭길을 걸으며 민주당 내 수박계열 의원들 퇴출 운동으로 대선 패배의 절망감을 극복하고 총선 대승을 거둔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이제 모두가 기꺼이 당원들의 명령에 복종할 당선자들로 22대 국회를 가득 채우고, 조국혁신당이란 우군까지 덤으로 얻었으니, 드디어 검찰독재에 맞설 수 있는 삼권분립의 한 축을 든든히 구축했다는 자신감과 안도감이 충만했던 것이다. 이처럼 정치적 효능감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대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도대체 그런 정치적 효능감에 느닷없이 찬물을 확 끼얹은 89명의 당선자들은 누구인가. 투표가 비밀로 이루어져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민주당 사정에 밝은 정치분석가들은 민평련(민주평화연대), 586(80년대 학번 학생운동권 출신), 일부 친문(노무현·문재인 대통령 덕분에 국회의원이 된 이들) 등 당내 계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 혐의가 크다고 입을 모은다. 민평련과 586은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그 특징은 한 마디로 엘리트주의라고 한다. 자신들이 민주화를 이끈 가장 양심적이고 유능한 인재들이란 자부심이 크고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간단치 않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그런 자부심을 공유하고 정치를 해오면서 선후배들끼리의 결속력이 강해진 만큼 배타성도 강해서 그럴듯한 자리가 생기면 자기들끼리 밀어주고 끌어주는 의리가 대단하다고 한다. 그러니 자기 당 지지자 열 중 아홉이 추미애를 지지해도 눈 딱 감고 자신들 계파의 보스급인 우원식을 밀었다는 것이다. 나는 우원식 의원과 일면식도 없지만 언론을 통해 전달되는 그의 온화한 인품과 민생을 위한 헌신과 열정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21대 국회의장들처럼 최소한 법조문에 들어있는 ‘중’과 ‘등’ 간 차이를 모를 만큼 무식(을 가장한 교활)하지도 않을 것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해 결단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무작정 합의를 종용할 만큼 우유부단(을 가장한 비겁)하지도 않을 것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