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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외교전 본격화, 방황하는 '윤 정부’(2)

이번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양국 간에 근본이해의 충돌은 없다면서 한·중 관계에서 미국의 간섭 배제를 촉구하였다. 또한 한·중 경제무역의 규모가 크고 상호보완성이 강하므로 양국이 장기적인 파트너가 되어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해 세계 자유무역 체계를 지키고,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적이고 원활한 흐름에 협력하자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조태열 장관은 한·중 관계와 한·미 관계가 제로섬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서 7차례나 협력을 언급하며 양국 관계의 발전 의지를 밝히는 데 그쳤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문제는 중국의 최대 현안이자 미국의 대중 정책의 핵심이다. 지난 426일에 열렸던 미·중 외교장관회담에서도 왕이 부장은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미국이 중국의 발전권을 제약한다면서 탈위험화(de-risking)를 내세운 미국 주도의 대중 수출통제 조치를 비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측은 이번 한·중 회담에서 미국의 반도체 정책에 대해 어떤 논의가 이루어질지 예의주시했다. 517일 조태열 장관이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한·중 회담의 결과를 설명한 것은 미국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태열 장관은 이번 한·중 회담이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기보다는 양국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교환하는 자리였다고 밝히면서 난관이 있더라도 이견이 갈등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관리하는 가운데 협력의 모멘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초 기대했던 한한·중 관계의 분위기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를 넘어서는 의미 있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주변국 외교를 활성화하는 가운데서도 대러외교만큼은 중단되어 있다. ·러 관계와 관련해 지난 427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러-우 전쟁이 끝나면 복원이 가능하다는 낙관 아닌 낙관적 전망을 내놓았다. 본인이 러시아 대사와 양자 외교를 담당하는 외교부 1차관을 지낸 경력이 있고, 현재 윤석열 정부의 안보 책임자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그의 발언에 무게가 실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국제정세 인식은 안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중심의 친서방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피동적이다. 장호진 실장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러 관계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전쟁이 끝나면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한국이 우려하는 핵심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지 않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이른바 레드라인을 지키며 양국이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러시아는 주변 4국 가운데 역사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리스크가 적은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시절에 시작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보수-진보를 넘어 30년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한·러 우호 관계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파탄 나고 말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외생변수가 작용했다고는 하나, 일본이 시베리아 가스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서유럽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대러외교는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장 실장은 외교부 1차관 시절에 작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한·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리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해 한·러 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방북에 이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갖고 양측 간에 군사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년은 물론 이번 그의 한·러 관계 전망은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한·러 관계의 복원과 관련해 국제정세 가속화 등 심각한 외생변수가 없을 것 우크라이나전 이전으로의 정상화 두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대로 한다면, 우리의 대러외교는 끊임없이 외생변수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물론 크림반도까지의 완전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젤렌스키 평화공식이 유지되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다. 결국 한국 외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겠다는 외교 무능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국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외교력 회복과 국익 추구,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한··3자 안보협의회 등 제3국을 겨냥한 안보협력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미국이 조성한 군사적 긴장과 대북 제재·압박을 풀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당사국들이 만나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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