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외교전 본격화, 방황하는 '윤 정부’(3)
하지만 그의 국제정세 인식은 안이할 뿐만 아니라 미국 중심의 친서방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피동적이다. 장호진 실장은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한·러 관계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이며 전쟁이 끝나면 양국 관계가 복원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한국이 우려하는 핵심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하지 않고,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 이른바 ‘레드라인’을 지키며 양국이 관계를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러시아는 주변 4국 가운데 역사적으로나 국제정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리스크가 적은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 시절에 시작된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보수-진보를 넘어 30년간 지속되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한·러 우호 관계는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파탄 나고 말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외생변수가 작용했다고는 하나, 일본이 시베리아 가스전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서유럽국가들이 러시아와의 경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보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대러외교는 잘못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장 실장은 외교부 1차관 시절에 작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으로 한·러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리라고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그로 인해 한·러 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쇼이구 국방장관의 방북에 이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북·러 정상회담을 갖고 양측 간에 군사 교류가 본격화되었다. 그런 점에서 작년은 물론 이번 그의 한·러 관계 전망은 지나치게 안이하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는 한·러 관계의 복원과 관련해 △국제정세 가속화 등 심각한 외생변수가 없을 것 △우크라이나전 이전으로의 정상화 두 가지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대로 한다면, 우리의 대러외교는 끊임없이 외생변수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또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은 물론 크림반도까지의 완전 회복을 목표로 하는 ‘젤렌스키 평화공식’이 유지되는 한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정상화는 요원한 일이다. 결국 한국 외교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지 않겠다는 외교 무능의 자기 고백일 뿐이다. 윤석열 정부의 잇따른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련국들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일본은 윤석열 정부의 굴종적인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외교력 회복과 국익 추구, 한반도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도 ‘중·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통해 한·미·일 3자 안보협의회 등 제3국을 겨냥한 안보협력체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미국이 조성한 군사적 긴장과 대북 제재·압박을 풀기 위해 실질적인 조처를 하라고 촉구하면서 북한을 비롯한 당사국들이 만나 한반도 문제를 정치적·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 중·러 양 정상은 두만강 하류에서 중국 선박의 항해 문제에 대해 북한과 함께 건설적인 의견 교환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중국이 오랫동안 동해 쪽 출해구(出海口)를 확보하고자 했으나 북한과 러시아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만약에 중국이 출해구를 확보하게 되면, 동북 3성의 물류난이 해소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북극해 항로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러시아가 합의해 주었기 때문에 북한은 더욱 거센 압박에 내몰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한민족 전체의 이익과 관련된 문제이지만,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를 북한과 협의할 어떠한 대화 창구도 갖고 있지 못하다. 북한의 반응도 매우 비판적이다. 5.16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조태열 장관이 왕이에게 한반도 평화, 안정과 북한 비핵화를 위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하자, 5월 16일 박명호 외무성 중국 담당 부상은 “한국 외교관들이 20세기 케케묵은 정객들의 외교 방식인 청탁과 구걸 외교로 아무리 그 누구에게 건설적 역할을 주문한다고 해도 우리는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주권적 권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남북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이 부재한 상태에서 대화 창구마저 없는 윤석열 정부에게는 뼈아픈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외교의 근본적인 문제는 국제정세의 신냉전 인식과 진영외교, 이념외교적 접근에 있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분단국 리스크에 발목이 잡힐 경우, 우리 외교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변국의 외교전에 밀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기존 외교 노선의 성찰과 전환 없이 각국의 움직임에 수동적 대응하는 형태로 외교전에 뛰어드는 바람에 오히려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윤석열 외교는 4.10 총선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기존 외교 노선을 지속할 국내의 정치적 동력을 크게 상실하였다. 앞으로 닥쳐올 외교 폭풍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안보의 전면적인 인적 쇄신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