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근 사단장, 작년 여름 저도 방문했었다(1)
육군사관학교 41기 출신의 한 예비역 장교가 최근 필자에게 해준 말이 있다. 총선이 끝나고 선후배들이 모인 자리에서 “육사가 국회의원 총선을 말아 먹은 건 살다가 처음 본다”는 말이 나왔다는 거다. 지난해 육사 교정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는 소동으로부터 선거운동 시기에 이종섭 전 장관의 호주 대사 발령까지, 총선 민심을 악화시킨 결정적 역할을 한 세력이 바로 육사 출신이라는 설명이다. 이 인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해에 국방부 검찰단이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을 항명 수괴로 입건한 배후에도 바로 육사 출신들이 있었다며 깊은 탄식을 토해냈다. “망상에 젖어 허위사실로 상관을 모욕하고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황당한 이유로 박정훈 대령을 구속시키겠다며 영장을 신청한 책임자가 바로 육사 출신이며 사법고시를 거친 김동혁(육사 54기) 국방부 검찰단장이다. 작년에 국방부 검찰단과 협조하여 박 대령에 대한 처벌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괴문서를 작성해 국방부 자문위원에게 배포하도록 한 당사자로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 근무하는 육사 출신의 이 아무개 중령(육사 62기)이 주목된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4월의 공수처 조사에서 이 아무개 중령이 박 대령에 대한 항명죄 적용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에서 작년 7월 31일에 해병대 수사 결과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한 임기훈(육사 47기) 국방비서관은 이종섭(육사 40기)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하여 대통령의 격노 사실을 전한 당사자로 추정된다. 그날 오전 11시 45분에 이종섭 장관에게 걸려온 대통령실의 통화 당사자는 임기훈 비서관이라는 게 대체적인 정설이다. 같은 날 휴가 중이었던 임종득(육사 42기) 안보실 2차장은 무슨 비상사태라도 벌어진 양 김계환 사령관에게 세 번이나 전화를 했다. 더 놀라운 주장도 있다.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 김정민 변호사는 윤 대통령과 국방부에 박정훈 대령을 구속시키라고 조언한, 사법고시를 합격한 육사 출신의 또 다른 예비역 장교가 있다고 최근에 폭로했다. 김 변호사의 주장과 똑같은 내용을, 앞에서 소개한 육사 41기 인사에게서도 확인했다.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구속 시도와 기소는 “육사와 검사의 합작품”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용산 일원에 떠도는 모양은 분명 심상치 않다. 특유의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이들은 윤 대통령의 의중을 간파하고 해병대 수사단을 초토화하는 데 누구보다 신속했다. 작년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사흘 간 해병대 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를 저지하고 경북경찰청으로부터 사건 기록을 회수하였으며 박 대령을 항명 수괴로 입건하는 데 결집력을 과시한 이들은 지금도 윤 대통령을 방탄하는 호위대를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이 왜 그토록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비호하는지, 그 내막은 아직 베일에 가려 있다. 정확한 이유를 모른 상태에서도 신속하게 사법절차를 먼저 밟음으로써 “충성은 행동으로”라는 구호를 몸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들조차 알지 못하는 윤 대통령과 임 전 사단장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재작년 포항 일원에서의 폭우 사태와 작년 7월의 경북 예천의 폭우로 인한 산사태 현장을 방문한 적 있는 윤 대통령은 해병 1사단이 상륙돌격장갑차를 동원하여 현장을 수습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이유만으로도 윤 대통령이 임성근 해병 1사단장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고 쳐도 사건 기록을 무리하게 회수하고 박 대령을 처벌하는 수준으로까지 한참 나간 데에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에 아직 언론에 알려지지 않은 중요한 정황이 하나 더 있다. 경북경찰청으로부터 군검찰이 이첩된 서류를 회수하던 작년 8월 2일. 전북의 세계 잼버리 대회 개막식에 참석한 윤 대통령 내외는 행사 직후에 거제도에 있는 대통령 휴가지인 저도로 휴가를 떠났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대통령 휴가 기간 중에 휴가지 외곽 경비를 해병 1사단의 신속 대응 중대가 맡았다는 점이다. 이전에도 해병대가 대통령 휴가지의 외곽 경비를 맡은 적이 있지만 해병 정예부대를 특별히 경비부대로 편성하여 대통령 휴가 기간에 출동시킨 것은 이례적이다. 이 당시 해병 1사단은 채 상병 사망으로 인해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를 받던 뒤숭숭한 상태였다. 대통령은 휴가 기간 첫날부터 만찬장에서 술판을 벌였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김건희 여사의 웃음소리가 컸다”고 증언한다. 대통령의 격노로 처벌을 면하고 보직해임을 기다리며 관저에 대기하던 7월 말을 이종섭 장관의 특별명령(?)으로 사후에 휴가로 처리하는 은덕을 입은 임 사단장은 공교롭게도 대통령 휴가를 경비하는 중책까지 맡게 된 셈이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