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양심은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까? 크게 세 부류라고 난 본다. 첫째, 처음 판사 선서를 했을 때처럼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사회정의를 위해 헌신할 의지를 여전히 간직한 양심. 둘째, 판사의 특권을 내면화해 잘 먹고 잘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양심. 셋째, 오로지 일신의 영달과 부귀영화를 더 하고자 아예 수구 기득권 세력에게 저당 잡힌 양심. 사람들은 비슷비슷한 사안들에 대해서 법원의 입장이 서로 다르거나 바뀔 때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개탄한다. 특히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더욱 그렇다. 자신의 입장과 동일한 판결을 하면 그게 바로 상식이라며 손뼉을 치지만, 그 반대의 경우에는 정의가 무너졌다고 분노한다. 지난 금요일(7일) 이화영 대북 송금 혐의에 대해 9년 6개월 실형을 때린 신진우 부장판사의 판결을 접하며 많은 민주·진보 시민들이 느꼈을 감정이 바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아주 오래전부터 법정은 절대 신성한 곳이 아니며 법정에 나온 검사는 물론 법대에 높이 앉아있는 판사들도 그 성분과 크기, 모양이 각각 다른 양심을 지닌 평범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후, 과거 사형까지 때렸던 숱한 조직사건, 간첩단 사건, 민주화운동 사건들의 재심에서 속속 무죄가 선고되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랬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2013년 9월 10일 한명숙 전 총리 2심 판결이었다. 2010년 12월 6일부터 이듬해 10월 31일까지 진행된 한 전 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재판은 23차례 공판, 20여 명의 증인, 유례 드문 판사의 현장검증을 거쳐 완벽한 무죄가 선고됐으나 2심 재판장 정형식은 단 3차례 공판, 검찰 측 증인 단 두 명의 증언만을 듣고 유죄로 뒤집었다. 유죄 판결의 이유를 딱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러저러한 증거와 증언이 있고 뇌물 공여자가 1심에서 양심선언도 했지만, 그가 검찰에서 이미 뇌물을 줬다고 진술한 검찰조서를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신진우 판사의 판결은 정형식의 한명숙 판결과 판박이다. 사건의 실체를 짐작할 만한 정황증거는 무시하고, 믿을 만한 증거는 배척하고, 오히려 신뢰성 없는 증인의 증언만을 신줏단지처럼 받들었다. 검찰이 이재명 대표를 엮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려 했다는 증언이 속출하는데도, 재판 초기부터 '무조건 유죄'라는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좌고우면 없이 일직선으로 내달은 의혹이 역력하다. 게다가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한 것을 질책했다니, 피고인이 스스로를 방어하고 사건 조작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폭로한 '검사실 연어회 술 파티 의혹'을 오히려 피고인에 대한 중형의 근거로 삼은 셈이다. 이건 완전히 검사와 한 몸을 이룬 판사다. 한명숙 전 총리는 상고심에서 유죄가 확정되어 꼬박 2년 징역을 살았고 지금도 추징금에 시달리고 있다. 잠시 유혹에 빠져 모해위증에 가담했던 한만호라는 인물은 양심선언이 오히려 위증죄가 되어 곱징역을 살고 나온 후 화병으로 일찍 죽었다. 그 대신 판사 정형식은 지난해 헌법재판관이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 헌재가 안동완 검사의 탄핵소추를 기각할 때, 안 검사의 유우성 씨에 대한 보복적 공소제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무지막지한 판단을 내린 세 명의 재판관 중 하나로 이름을 올렸다. 신이 아닌 인간, 그것도 저마다 균일하지 않은 양심에 따라 재판받아야 하니 '복불복'이란 말이 실감이 나는 사법 현실이다. 그저 재판받는 사람은 '좋은 판사' 만나는 것이 복 중의 제일 큰 복일 테다. 그러나, 문제는 불행히도 대한민국 사법부에서는 복 받을 확률이 지극히 낮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적인 사건이 그렇다. '정형식의 예'에서 보듯 정치적 의미가 큰 재판일수록, 눈 딱 감고 편향성을 드러내는 판사일수록 보수정권에서의 보상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시위 재판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신영철 판사도 대법관에까지 올랐다. 최근의 경우만 꼽더라도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조병구 부장판사, 정경심 교수에게 표창장 하나 위조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한 임정엽 부장판사 등이 있다. 그 짧지 않은 명단에 이제 신진우 판사도 이름을 올릴 만하다. 이 명단이 사법 정의를 위한 '역행보살'의 명단이 될 것이냐, 장차 대법관 혹은 헌법재판관의 예비 명단이냐의 여부는 두고 볼 일이다. 확실한 것 하나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판결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아무리 조중동이 아우성을 쳐도 오염된 판결은 버려야 하는 것이지 받들어 모실 신성한 것이 아니다. 정치적인 잘못은 정치적인 힘으로 바로 잡을 수밖에 없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