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묻는 3개의 사건
최근 ‘한국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한국 저널리즘이 겪고 있는 신뢰의 위기를 날것으로 드러내는 사건들입니다. 한국 저널리즘이 신뢰를 상실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 없이는 민주주의의 회복도 힘들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론 학자들은,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가 진실 보도와 공정 보도, 그리고 권력 감시에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언론 학자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공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저널리즘의 일차적인 목적은 시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실 보도와 공정 보도에 초점을 둔 말입니다. 셋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가치입니다마는, 저는 ‘검찰 독재’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의 횡포가 심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권력 감시’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즉,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정신이 이 시대 한국 저널리즘의 최고의 가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최근 벌어진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한 사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5월 24일, ‘대통령의 저녁 초대’라는 이름으로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벌어진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만찬 간담회입니다. 말만 간담회지 국정의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는 대화는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 웃고 잡담하며 떠드는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2백여 명의 기자가 초대받아 참석했지만, 최대 현안인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은 화제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전국에서 공수된 산해진미를 맛보느라 여념이 없었는지 서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물가고를 입에 올리는 기자도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김치찌개를 더 달라고 애교 떠는 목소리, 윤 대통령이 하얀 목장갑을 끼고 말아주는 계란말이에 환호하는 모습만 돋보였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환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기자들의 사진은 쳐다보기 민망했습니다. 여기서 춘향전에 나오는, ‘금술잔의 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쟁반의 맛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농 흐를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풍악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라는 그 유명한 시를 연상한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 1호기자‘를 자임하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이 권력 감시는 커녕 권력과 한통속이라는 혐의에 확신을 더해줬습니다. 다음은 북한의 오물 풍선과 관련한 보도입니다. 주요 미디어의 관련 기사를 쭉 훑어보면, 북한이 분뇨와 쓰레기를 담은 풍선을 날려 남한 주민이 곳곳에서 불편을 겪었고, 남한 정부가 강하게 비난하며 보복 조치를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무성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큰 관심사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남북 관련 보도에서 사건의 맥락과 원인을 따지지 않고 북한의 행위만 지목해, 그들의 일방적인 도발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굳어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상대의 행위가 없는 일방적인 도발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뭔가 거친 행동을 할 때는, 한국 쪽에서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행위가 있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른바 북한의 도발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북한의 오물풍선 공세도,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먼저 북쪽으로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내용이 담긴 풍선을 날린 데 대한 대항조치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2일 중단을 선언했다가 9일 다시 풍선을 날린 것도, 그 사이 다시 민간단체가 북쪽으로 풍선을 재차 날린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돌아봐야 할 사안은,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동해 가스전 발견 발표입니다. 윤 대통령의 발표는 누가 봐도 설익은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시추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마치 최대 140억 배럴의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주요 미디어는 이를 마치 사실인 양 대서특필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깜짝 발표’를 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고 적시한 미국의 액트지오가 어떤 회사인지 의문을 품고 추적한 곳은, 거대 주류 미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신문을 비롯한 비주류 소규모 미디어와 개인들이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던 하라 도시오 전 <교도통신> 사장은, <저널리즘의 사상>이라는 책에서 “저널리즘의 적은 언론·보도를 탄압하는 자, ’진실 보도’를 저해하는 자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국적은 ’허구’라고 생각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벌어진 세 건의 사안을 대하고 보도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면서, 하라 도시오의 말이 죽비소리처럼 다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