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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광기에 의한 국기문란의 실체(2)

이들은 기록 회수에 해병대 수사단이 반발할 것으로 보고 해병대 수사단의 입을 틀어막을 궁리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저녁에 박 대령을 항명 수괴죄로 입건하고 곧바로 수사단을 압수수색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윤 대통령이 눈을 부릅뜨고 윽박지르는 상황에서 혼비백산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법기술자들이 대통령의 노기를 달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윤 대통령의 광기에 의한 광란의 하루였다. 이날의 광란은 해병대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었다. 김계환 사령관을 비롯한 해병대 지휘부는 해병대 전체가 대통령에게 항명하는 반역 집단으로 초토화되느니 박정훈 대령 한 명의 망상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로 정리되는 것이 일단 해병대 위기를 수습하는 길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마도 윤 대통령은 해병대 수사단이 아니라 김계환 사령관이 자신의 이첩 보류 지시를 어긴 것이라고 의심하고 그날 국방부 검사들로 하여금 김계환 사령관을 조사하도록 했다. 4시간의 조사를 마친 김 사령관은 수사단의 광역수사대장에게 전화를 하여 자신이 조사받은 사실을 알려주며 이후 상황에 대비하도록 한다. 덧붙여서 그는 “(국방부가) 이렇게 하다가 안 되면 나중에 (박정훈 대령이) 내 지시사항을 위반한 것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상황을 설명한다.
이 당시만 하더라도 김 사령관은 국방부가 위법한 지시를 한 데 대해 박 대령이 답답해서고민을 하다가 경북경찰청에 이첩을 한 것이니 어떻게 됐든 간에 우리는 지금까지 거짓 없이 했으니까 됐어라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가야 한다고 수사단을 위로한다. 해병대 조직을 보호해야 한다는 절박함과 박 대령의 이첩이 정당했음을 동시에 대변해야 하는 사령관의 고뇌가 엿보인다. 여기까지는 사령관으로서의 어려운 처지로 이해되지만, 청문회 증인으로서의 그는 힘에 굴복하여 거짓을 말하거나 체념한 듯 진술을 거부하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청문회를 통해 우리는 두 가지 뚜렷한 흐름을 발견한다. 첫 번째는 권력자 한 명의 광기와 집착이 대한민국이라는 민주공화국을 지탱하고 있는 법과 시스템을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가공할 위험이다. 두 번째는 그 위험에 맞서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고위 공직자 그 누구도 사태를 바로잡기 위해 직언하거나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원죄가 바로 국회 청문회에서 증인선서와 증언 거부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방화벽이 무너져 있어 언제든 와해 될 수 있는 위험에 처했다고 보아야 한다.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한 이 공화국에서는 법과 시스템보다 힘과 궤변이 더 판을 친다.
지금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 정도라면 국회는 더 이상의 광기로 민주정이 유린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긴급히 조치할 사항이 있다. 먼저 경북경찰청이 조만간 채 해병 사망사건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걸 막는 조치다. 이첩 서류를 국방부에 순순히 내주고 채 해병이 사망한 지 1년이 다 되도록 수사를 미뤄온 경북경찰청이 공정한 수사를 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대통령실 전화에 이첩받은 서류가 정식으로 이첩받은 것이 아니니 회수라는 용어를 쓰도록 국방부에 서류 탈취의 방법까지 알려주었던 경북경찰청이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임성근 전 해병 1사단장을 무혐의나 가벼운 죄질로 판단한다면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국민의힘은 이를 근거로 일제히 역공에 나설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실 규명의 민의도 짓밟히게 된다. 이미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7월까지 수사를 마치도록 경북경찰청에 공개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
두 번째는 박정훈 대령, 이용민 중령을 비롯한 해병대 주요 관계자들을 긴급 구제하는 조치다. 이들이 조직 내에서 극도로 고립되어 사실상 감금 상태에 있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해병대 사령부로부터 이들에 대한 근무를 통제하는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 이들이 보다 자유롭고 건강한 상태에서 진실을 말하도록 온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나서서 도와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법 방탄의 논리로 얼룩진 한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다. 고위 공직자가 위법한 명령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정부의 공적 가치를 재확립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구상해야 한다. 공직자에게 위법한 지시나 명령에 대해 반드시 소명하거나 거부해야 하는 의무를 일깨우지 않으면 이 정부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안위를 위한 방탄의 도구로 전락하게 될 위험이 크다. 그 위험을 차단하지 않으면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민주주의 이전 사회로 대한민국이 퇴행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미 이스라엘과 헝가리, 폴란드와 인도에서 우리는 그런 퇴행을 목격했다. 지금 야당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모든 힘을 다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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