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공통년 64년 로마제국에게 처형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베드로의 배신이 마가복음에 담긴 사실은 당시 예수운동 공동체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예수운동이 가장 자랑하던 위대한 인물 베드로의 치부를 마가복음 저자는 전혀 감추지 않고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성서는 그토록 정직한 책이다.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배신과 회개는 오늘도 우리에게 여러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 예수의 행동과 말씀을 직접 보고 듣고,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따르던 사람들도 얼마든지 예수를 배신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예수를 직접 보고 듣고 따르던 베드로 같은 수제자도 예수를 배신했다면, 예수 떠난 2000년 후 지금의 우리야 얼마나 더 예수를 배신하기 쉽겠는가. 둘째, 우리가 베드로처럼 회개하기는 쉽지 않다. 배신한 사람이 언젠가 회개한다는 보장이 없다. 배신한 사람은 배신을 자꾸 반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배신은 아주 사악한 사람들만 저지르는 것은 아니다. 다름 아닌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를 배신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배신, 배신의 일상화와 평범성이 종교나 정치에서나 큰 문제를 일으킨다. 베드로의 죄는 무엇이었을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죄, 거짓말을 한 죄였다. 베드로가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죄요, 거짓말을 한 것도 죄다. “예” 할 것을 “예”라고 말하지 않아도 죄요, “아니오” 할 것을 “아니오” 말하지 않아도 죄다. “예” 할 것을 “아니오” 말해도 죄요, “아니오” 할 것을 “예” 말해도 죄다. 언론과 종교에게 물을 차례다. 언론과 종교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언론과 종교는 거짓을 말하고 있지는 않는가. 언론인과 종교인은 “예” 할 것을 “예”라고 말하고 있는가.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 말하고 있는가. 언론인과 종교인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여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리는 언론이 가짜뉴스의 폐해를 비판한다고 하자. 그 언론은 거짓말 생산업체에 불과하다. 그런 언론이 시민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을까. 거짓말은 정치도, 언론도, 종교도 뿌리까지 다 망가뜨린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이요, 불의 앞에서 침묵도 거짓말이요,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에 속한다. 거짓은 다양한 얼굴을 갖고 있다. 하느님이 지금 대한민국 언론인들과 종교인들에게 묻고 있다. “내 백성들이 고통 당할 때, 너희들은 어디 있었느냐? 내 백성들이 울부짖을 때, 너희들은 진실을 말하였는가?” 단테 신곡에 유명한 말이 있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순간에 중립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 언론인들과 종교인들의 운명에 대한 나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그들 대부분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슬픈 예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