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미디어가 정 법사위원장과 유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가 조롱과 야유 섞인 설전을 벌였다며, 양비론 관점에서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시각의 보도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두 의원의 상호 언쟁 중에 나온 발언은 분명하지만, 도긴개긴의 공방 보도로 넘어가기엔 유 의원의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유 의원이 구체적인 학교 이름까지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그 말속에 서울법대 출신(유 의원)이 비서울대 출신(정 위원장)보다 만능이고 우월하다는 오만한 엘리트 의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울법대 나온 유 의원이 건국대 공대 나온 정 위원장보다 국회법도 잘 아는지는 국회법 자격시험이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서울법대라는 간판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서울대 병 중환자’라는 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서울법대 출신 아니면 다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깔보는 사람이, 과연 비서울대 출신이 거의 99.99%를 차지하고 있는 일반 유권자를 위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지 심히 궁금합니다. 이왕 엘리트 병 얘기가 나왔으니, 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사례가 떠오릅니다. 지난 22대 총선 유세 때,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수원병에 출마한 이수정 경기대 교수의 지지를 호소하면서 불쑥 내뱉은 말입니다. 한 위원장은 “이수정은 여기서 이러지 않아도 얼마든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이다. 이수정이 여러분을 위해서 나왔다”라고 말했습니다. 재산도 많고 좋은 직업도 가지고 있는데 굳이 안 해도 될 희생을 하며 가엾은 유권자들을 위해 출마했으니 그를 찍어주지 않으면 여러분이 손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들으며 이수정 대신 한동훈으로 이름을 바꿔도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선민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저는 지금도 지난 총선에서 나온 수많은 망언 중 한 위원장의 이 발언이 최고의 망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권자의 심부름을 하겠다고 나선 정치인이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정치관이기 때문입니다. 한 위원장은 총선 패배 이후 잠시 전면에서 물러섰다가 최근 국민의힘 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가 집에서 쉬는 동안 이런 엘리트·특권 의식에 찌든 정치관에서 탈피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가 ‘정치는 엘리트의 시혜’라는 선민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당 대표는 거머쥘지 모르겠으나 좋은 정치, 다수의 지지를 받는 정치는 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입니다. 내용보다 간판을 앞세우는 정치,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시혜의 정치, 소수 기득권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정치는 ‘반민주·반서민 정치’의 서로 다른 모습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발전에 역행하는 나쁜 정치입니다. 마침 엘리트 관료의 대표 격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7일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의 ‘편집인 포럼’에 참석해, 상속세 개편을 세제개편 중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꼽으면서 7월 말 세법 개정안에 반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서민들은 물가고에 신음하고 중소 상인들은 코로나 때보다 손님이 더 없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 판인데, 그의 귀에는 그들의 신음과 아우성이 전혀 들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서민을 보살피려 하기는커녕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부자 감세’에만 매달리고 있으니, 엘리트도 부자도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저 복장 터질 지경입니다. 독립 조사회사 ‘광수네 복덕방’의 이광수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최고세율 26%보다 높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1년에 최고세율 50%의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2900명에 불과합니다. 전체 인구의 0.005% 정도입니다. 그런데 윤 정권은 뭘 위해서 그들 극소수의 세금을 내려주려고 하는지 정책 목표는 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감세를 하면 민생이 좋아진다고 눙치고만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위해 왜 부자 감세가 필요한지 사회 구성원들이 나서 치열하게 따져 물어야 합니다.” 저는 서울대 병, 엘리트 병에 사로잡힌 채 기득권 이익 지키기에만 골몰하는 이 나라의 집권 세력의 언행을 보면서, 1997년의 혹독한 겨울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매우 걱정입니다. 윤석열 정권 들어 더욱 노골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서울대 병, 엘리트 병이 망국병으로 도져 큰 화를 불러오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굳게 믿습니다. 좋은 정치와 좋은 삶은 엘리트 병에 걸린 사람들이 내려주는 시혜가 아니라, 나쁜 정치와 나쁜 삶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고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끝>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