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찬스 특혜입학’ 보장법령.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이런 법령이 가당키나 한가? 미국 대학에 기부금 입학제가 있다고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말도 꺼내기 어렵다. 최소한 겉으로는 그렇다. ‘교육 공정성만큼은 팔아먹지 말자’는 게 대한민국 교육의 역사였다. ‘최소한 공립고교에서는 입학 공정성을 지키자’는 게 국민적 합의 아닌가. 그래서 대한민국에서 계속 강화되고 있는 게 바로 고교평준화 제도였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PISA(국제학업성취도평가) 결과 20여 년째 최상위인 대한민국 교육의 힘을 바로 이 평준화 제도에서 찾고 있다. 한국은 부모의 빈부격차에 상관없이 최상의 학업성취도를 내는 나라로도 유명하다. 미국 대통령이었던 오바마까지도 재임 중 공개석상에서 한국 학교를 여러 번 칭송했던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런 교육의 역사를 거스르고, 국민적 합의와 교육의 성과를 깨려고 시도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았다. 맨 앞장 선 사람이 바로 이주호 교육부장관이다. 이주호 교육부는 최근 ‘자율형공립고(아래 자공고) 2.0’이란 말을 만든 뒤,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자공고는 기존 자사고(자율형사립고)나 외고(외국어고)처럼 교육과정의 자율성을 보장받지만, 운영비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공립고교를 말한다. 지원액이 어마어마하다. 기존 혁신학교 지원액과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거액이다. 학교마다 한 해 국민 세금 2억씩 모두 5년 간 10억 원을 퍼준다는 게 교육부 계획이다. 일반고에 가야할 돈을 자공고에 집중지원한다는 이야기이다. 교육부는 자공고를 올해 2학기 전국 60개교 운영하는데 이어 내년 3월에는 85개교로 늘릴 예정이다. 이런 자사고를 만든 이가 이명박 정부 시절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를 구현했던 이주호 교육부장관이었는데 그가 다시 윤셕열 정부 교육부장관으로 컴백해 ‘자공고 2.0’ 계획으로 자사고 시즌2에 나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과정 자율화 선물을 받은 자사고와 외고가 한 일은 무엇이었나? SKY 진학 또는 해외 유학을 위한 대입몰빵 교육이었다. 지금의 자공고는 교육과정은 자사고처럼 풀어주지만, 돈은 세금으로 지원하겠다는 고교다. 그런데 이런 변형 자사고인 자공고에 더 수상한 공작이 벌어지고 있다. 23일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확인해보니, 교육부는 지난 1일 “자공고의 입학정원 중 일정 비율을 학교장이 정하는 방법으로 입학전형을 실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 공립 일반고는 교육감이 근거리 배정하는 평준화 제도가 원칙이었다. 비평준화지역도 교장이 학교생활기록부를 보고 학생을 선발해야 했다. 하지만 자공고의 경우 ‘학교장이 정해서 선발’하는 다른 입학 통로를 만들겠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선발하도록 하겠다는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이렇게 이런 칼럼을 써서 고발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부는 이 시행령 개정 이유를 다음처럼 적어놓았다. “자공고가 지역 기관에 종사하는 임직원의 자녀를 일정 비율 모집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 자공고 교장에게 선발권을 주는 까닭은 지역 기관 임직원 자녀를 뽑기 위한 특혜 전형을 만들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역 기관은 공기관은 물론 학교와 협약을 맺은 중견 기업체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공기관 부모와 중견 기업체 부모를 둔 학생에겐 새로운 고교 특혜 입시통로가 생기는 것이다. 네이버와 카카오와 손잡고 학교를 운영하겠다는 자공고라면, 이들 기업의 자녀들에게 입학 특혜를 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런 계획은 학생생활기록부나 학생의 소질을 보고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 직업을 보고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어서 현대판 ‘음서제’라고 할 수 있다. 음서제는 고려와 조선시대 고관대작의 자녀에게 과거시험을 면제해 주고 관직을 거저 주던 제도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이런 고등학교는 이미 존재해 왔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현재 삼성이 설립한 충남 삼성고는 정원의 70%를 임직원 자녀로 뽑는다. 포스코가 설립한 자사고인 포항제철고는 입학정원의 50%를 임직원 자녀로 선발한다. 인천하늘고는 인천공항 종사자 자녀를 약 40% 우선 모집한다. 자사고인 하나고도 하나그룹 임직원 자녀 20%를 따로 뽑는다. 하지만 이런 학교는 사립학교였다. 그런데 이주호 교육부는 지금 공립고에 대해서도 이같은 임직원 자녀 전형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나라가 세우고, 운영비도 한 해 2억 원이나 국민 세금으로 퍼주는 학교에 부모찬스 특혜 전형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공정성’을 내세우며 출범한 윤석열 정부에서 검경의 수사 공정성에서부터 국민권익위 공정성, 대학 표절 판단의 공정성 등이 절단나고 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제는 공립고교 입학의 공정성 또한 무너지게 생겼다. 이제는 부모가 돈이 있으면 자사고를 가면 되고, 부모가 기관과 기업체 임직원이면 자공고를 가면 되게 생겼다. ‘부모찬스 만세’ 시대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