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 l 축소

‘언론의 중립’이라는 망상(1)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 직후 아침이었다. 민주당 노종면 의원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중앙일보> 기사를 거론하며 빵만 캐지 않았다고 흥분하는 장면을 보고 뉴스를 검색했다. 도대체 뭐라 했기에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열을 냈는지 궁금했다. 다음(Daum)에서 어렵지 않게 기사를 찾았다. 제목은 사흘 내내 빵 싸움만 했다빵문회 욕먹은 이진숙 청문회’, 작성자는 윤지원 기자, 기사가 다음(Daum)에 오른 시각은 729일 오전 5시였다.
평소 포털의 뉴스 메인 페이지는 제목만 훑어보고 넘어간다. 기사 클릭을 되도록 삼간다. 정신건강을 위해서다. ‘조중동과 문화일보, 한국경제 등의 기사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본다. <중앙일보>에 윤지원이라는 기자가 있는 줄 몰랐다. 윤 기자가 쓴 기사를 처음 읽었다. 요약하면 이런 이야기였다. “민주당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자질을 가늠해야 할 인사청문회를 빵 논란으로 덮어버렸다. 최민희 과방위원장과 노종면 의원 등은 수준 낮은 말로 후보자를 조롱했다. 친민주당 성향 MBC를 사수하려고 청문회를 빵문회로 만든 것이다. 민주당은 이진숙 후보자의 정치적 편파성을 공격했지만 자질 검증과는 거리가 먼 빵문회를 통해 자신들의 편파성을 입증했을 뿐이다.” 잘못 요약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럽다면 기사를 검색해 보시라.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텍스트 요약은 잘 하는 편이다.
이 기사는 사실 보도보다 비평에 가깝다. 윤 기자는 이진숙 청문회의 수많은 사실 중에서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필요한 것만 골랐다. 잘못된 건 없다. 비평은 다 그렇게 한다. 기자 자신도 비평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별 문제 없다. 신문기사는 누구보다 먼저 독자가 비평한다. 윤 기자가 이진숙 청문회와 관련해 의미 있고 중요한 사실을 선택했는지, 선택한 여러 사실을 적절한 관계로 묶었는지, 그렇게 해서 경청할 가치가 있는 해석을 제공했는지 살핀다. 그 평가의 결과를 댓글로 쓴다. ‘좋아요화나요를 누르는 방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 평가를 말하겠다. 윤 기자의 기사는 좋게 말하면 핵심을 벗어났고,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의 본질을 호도했다. ‘호도(糊塗)’는 어떤 대상을 감추거나 덮는다는 뜻이다. 요즘 잘 쓰지 않는 단어라는 걸 알지만 적절한 다른 말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썼다. 윤 기자가 기사에 쓴 대로 방통위는 미디어 정책을 총괄하고 미디어 산업 발전을 견인하며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행정기구다.” 이렇게 중요한 국가기관은 걸맞은 자질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이끌어야 한다. 어떤 자질과 능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방통위원장이 적어도 공()과 사()를 구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공사를 구분하지 않는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사적 이익을 위해 미디어 정책을 왜곡하고, 미디어 산업을 불합리하게 규제하고, 방송의 독립성을 해칠 위험이 있다. 이것만큼은 윤 기자도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윤지원 기자는 야당 의원들이 왜 빵 구입 사실을 문제 삼았는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질을 호도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진숙 씨가 빵을 사 먹은 것은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업무와 무관하게 회사의 법인카드로 빵을 사먹었다면 잘못이다. 어디 빵만 그런가. 와인, 주유권, 골프, 오마카세, 백화점 쇼핑, 호텔 숙박, 회사 차량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회사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소비하면서 법인카드로 비용을 지불했다면 회사의 돈을 도둑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임이니 횡령이니 하는 법률적 쟁점은 따지지 않겠다. 자질 검증이라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목적에 초점을 두고 보면, 그보다는 공사를 구분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핵심 쟁점은 빵이나 와인 그 자체가 아니라 이진숙 씨가 MBC 본사 임원과 대전 MBC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했는지 여부다. 이 씨는 업무용으로 썼다고 주장하기만 했을 뿐 어떤 의혹에 대해서도 해명 자료를 내지 않았다. 증빙자료가 있다면 왜 내지 않았겠는가. 없어서 내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진숙 씨가 여러 해 동안 자신이 몸담은 회사를 착취했다고 추정한다. 장기간 회사를 착취한 사람이 방통위원장이 되면 국가와 사회를 착취할 위험이 있다. 이것이 빵 논란의 핵심이며 본질이다.
다시 말하지만 윤지원 기자는 그 점을 무시했다. ‘빵문회라는 말로 야당을 조롱했다. 어려운 문제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MBC중립 언론이 아니라 민주당 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제하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공영방송과 관련해 벌인 모든 일을 정당하다고 여길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국회가 추천한 야당 몫 방통위원에게 반년 넘게 임명장을 주지 않았다. 처벌 조항이 없다는 점을 악용해 법률을 위반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 이동관에서 김홍일을 거쳐 이진숙까지 대통령이 임명한 방통위원장이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임명한 부위원장 한 사람과 나란히 앉아 방통위의 모든 의사결정을 했지 않았는가.<계속>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이전화면맨위로

확대 l 축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