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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중립’이라는 망상(3)

첫째, 오늘날 한국의 언론인은 사회의 엘리트가 아니다. 최민우 기자는 내가 언론에 대해서 한 주장의 근거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저널리즘이 무엇인지, 20세기 저널리즘 규범이 왜 생겼는지, 그 규범이 뉴미디어 시대에 어떤 한계를 드러냈는지, 한국 언론이 그 규범을 지키는지, 왜 지키지 않는지, 신문사와 방송사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유튜브 저널리즘활동이 어떻게 사회의 공론을 활성화하는지 이야기했다. 설마하니 내가 언론이 편파적인 게 문제가 아니라 편파적이지 않아서 문제라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말을 했겠는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조사 연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왜곡해서 비평하는 기자를 엘리트라고 할 수는 없다. 논리학에서는 이런 행위를 허수아비 논증이라고 한다. 그는 내 견해를 비평한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허수아비를 무딘 칼로 내리쳤을 뿐이다.
둘째, 한국의 기성 언론은 기득권 집단의 일부이며 보수 정당과 한패이고 모든 부당한 기득권을 지키는 경비견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정치적 중립은 망상의 산물이거나 대중을 속이려고 하는 고의적인 거짓말이다. 기성 언론은 소멸할지언정 스스로 혁신하지는 않는다. 누가 개혁해 줄 수도 없다. 최민우 기자는 안심하시라. 우리 편으로 안 오면 재미없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은 적도 없고 놓을 뜻도 없다. 우리 편이 아니라고 누군가를 재미없게 만들 힘이 있지도 않다. 아직은 그런 말을 할 정도로까지 멍청해지지 않았다. 내가 줄기차게 언론의 정치적 편향성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은 시민들이 그렇다는 사실을 알면서 언론 보도를 대하면 언론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이 줄어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 무기는 말과 글뿐이다. <중앙일보>처럼 대단한 신문의 정치부장이 겁먹은 표정으로 엄살을 떨 일은 없다.
셋째, ‘유튜브 저널리즘은 사회의 공론을 활성화한다. 언론과 유튜브는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기성 언론도 유튜브 플랫폼을 쓴다. 신문사와 방송사는 여러 분야의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와 달리 유튜브에는 특정한 분야의 콘텐츠를 제공하는 다양한 채널이 무수히 존재한다. <김어준의 뉴스공장>KBSMBC의 보도 프로그램과 경쟁한다. 교양, 문화, 예능, 오락 등 다른 분야에는 그 분야의 신문 방송 콘텐츠와 경쟁하는 유튜브 채널이 있다. 유튜브는 언론을 대체하지 않지만 신문 방송의 정보 유통 독점은 확실하게 무너뜨렸다. 저널리즘을 뉴스를 결정하는 과정으로 정의(定義)한다면, 신문사와 방송사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도 저널리스트가 될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언론 개혁은 이룰 수 없는 목표다. 유튜브에서 수준 높은 저널리즘을 구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인다. 오늘 칼럼에 <중앙일보> 기자 두 사람의 실명과 그들이 쓴 기사 제목을 명시했다. <손석희의 질문들>에서 대담했던 한국일보 김희원 기자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김 기자는 언론을 한 묶음으로 비난하기보다는 잘못된 기사를 구체적으로 비판하는 게 언론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충고했다. 언론은 비판하는 사람을 적으로 여기며 기자의 실명을 거론하면 좌표 찍기라고 비난한다고 하자 자신이 지켜주겠다고 격려했다. 그래서 해 보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노종면 의원한테도 한마디 조언을 드린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흥분할 일은 아니었지 않으냐고. 조금 전에 다음 뉴스 포털에 들어가 윤지원 기자의 기사에 대한 반응을 확인했다. ‘추천해요좋아요는 각각 열 개, ‘화나요433개였다. 읽은 사람이 많지 않았고, 읽은 사람은 대부분 기자에게 화를 냈다. 민주당에 화가 난 독자라면 추천해요좋아요를 누르지 화나요를 눌렀겠는가. 그러니 노종면 의원은 화를 내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의 청문회 생중계나 재생 영상을 본 사람이 그 기사를 읽은 사람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많았다. 누가 얼마나 윤 기자의 비평에 공감했겠는가?
최민우 정치부장의 칼럼은 영향력이 더 미미했다. ‘추천해요좋아요는 각각 두 개와 여섯 개, ‘화나요는 서른아홉 개에 불과했다. 다른 포털에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본다. 노종면 의원은 원래 직업이 기자여서 그런지 신문 기사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듯하다. 걱정 덜어내시라. <중앙일보> 정치 기사와 칼럼은 옛날 같은 위력이 없다. 기껏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을 잘 수행한다고 믿는 소수의 시민들 중에서도 극소수가 읽고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시민들은 언론이 정치적으로 중립이라는 망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들이 하는 중립이라는 거짓말에 속지도 않는다. 그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 유럽 신학자들처럼 자기네가 중립이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망상을 품고 있을 뿐이다.<>



본 칼럼은 시민언론 민들레에 기 게재된 내용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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